정재영 부회장 언제부터였을까. 안경을 쓴 채로 가깝고 작은 글씨가 잘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그리고 안경을 벗고 가까이 대고 보거나 고개는 젖히고 팔은 펴서 보고 있는 나를 발견하는 순간, 왜 이러지? 설마, 나도 ‘노안(老眼)’이란게 왔나. 참 슬프고 충격적이었다. ‘벌써? 난 아닌데 아직…’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지만 현실이었다. 자연의 이치란 참 정직하다. 어느 누구에게도 치우치지 않는다. 잠시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예외는 두지는 않는다. 그동안 나는 자연의 법칙을 찾듯 ‘이것 아니면 저것’, ‘참과 거짓’을 가르는 데만 온 신경을 쏟아온 듯하다. 마치 그것이 정의이고 정답인 것처럼 그랬다. 자연의 이치가 시계처럼 정확하고 오차를 용납치 않는다면, 인생은 또 다른 세상인 듯하다. 정확하지도 항상 동일하지도 않다. 보면 면에 따라, 사람에 따라 너무도 다르고 실제로 달라 보인다. 나이가 들수록 생물적인 시력은 나빠지지만, 사람은 새로운 눈을 갖는다. 세상을 이해하고 바라보는 마음의 눈이다. 자연의 법칙만으로 결코 이해할 수도, 해석해서도 안되는 그런 눈이다. 나의 생물적 시력은 급격히 나빠지고 있지만, 마음의 눈 즉 혜안(慧眼)은 아직 뜨지 못하는 것 같다. 여전히 사소한(?) 일에 감정 상하고 마음 다치고 편견과 선입견으로 사물을,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자연의 이치만큼 인생의 순리도 믿는다. 마음의 눈을 뜰 것이란걸… 그 시간이 빨리 올 지 더디게 올 지는 모르겠지만, 이제는 마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려고 한다.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눈으로, 때론 냉철한 시선으로. 기자가 되려했던 초심의 열정에, 세상을 이해하려는 여유가 더해진 좀 더 성숙한 한 명의 기자가 되는 것, 부끄럽지만 기자협회 지회장의 개인적인 변이다. 우리 kbc 광주방송 선․후배는 물론, 동료 기자들이 함께 행복할 수 있도록 혜안(慧眼)을 갖춘 광주․전남기자협회가 되리라 믿는다.
광주전남기자협회 14-02-19 조회3835
최현수 부회장 "기자 선후배 여러분, 새해에는 안녕하십시요?" 기자들의 업무강도도 해를 거듭할수록 늘어나 정들었던 동료들이 하나 둘씩 편집국을 떠나고 있는 현실이다. 열악한 지역의 언론환경을 대변해주는 모습이다. 그럼에도 오롯한 '기자정신'으로 우리 사회의 곳곳을 현상과 진실을 올바르게 전달하기 위해 매일 취재 현장에서 바쁘게 뛰고 있다. 제39대 광주전남기자협회의 활성화와 위상을 높일 수 있는 해법은 간단하다. 기자협회 회원들의 적극적인 참여할 때 가능하다. 신문과 방송, 통신 등 회원사 간의 소통과 유대 강화는 물론 회원들의 복지 증진에도 더 많은 관심을 갖고 나아가 실질적인 지원이 이뤄질 수 있도록 집행부와 함께 고민해 나가겠다. 회원들의 화합을 토대로 즐거운 사랑방 같은 협회를 만들어 나가는데 작은 보탬이 될 수 있도록 말처럼 부지런히 뛰겠다. 나아가 광주전남기협이 지역발전을 위한 핵심 현안문제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노력도 경주할 생각이다. '청말띠'인 갑오년 새해, 선후배 기자 모두가 건강하고 희망과 행복이 넘치는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한다.
광주전남기자협회 14-02-19 조회3520
이윤주 부회장 제39대 광주·전남기자협회 여성부회장을 맡게 됐습니다. 뜻하지 않은 중책에, 특히 '최초'라는 수식어에 날이 갈수록 어깨가 무거워지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기자협회 회원들 중 다시 '여성'을 추려 생각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가 제겐 명쾌하게 풀리지 않는 숙제이긴 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그래야만 하는 것이 현실인 듯도 해 조금은 아쉬운 마음입니다. 앞으로 주어진 시간 동안 그 숙제의 해답을 찾기 위해 노력하려 합니다. 날로 늘어가는 여기자들과 보다 가깝게 소통하며 그들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그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창구가 돼야겠지요. 서두르지 않고 차근차근 소임을 다할 수 있도록 다가서겠습니다.
광주전남기자협회 14-02-19 조회3664
남들이 노병(老兵)이라고 일컫는 나이가 들었다. 지방신문에서 40여 년 동안 일해 오면서 잘한 것이 별로 없다. 그러한 내가 ‘기자생활을 되돌아본다는 것’은 부끄럽기도 하고 어려운 고역(苦役)일 수도 있다. 때문에 그 고역을 선뜻 할 수가 없으나 기자협회의 배려가 고마워 지난날의 한 순간을 돌이켜 본다. 나의 기자생활 중 가장 치열한 순간은 광주민주항쟁을 전 국민들에게 알리는 1980년 6월2일자 신문제작에 김준태 시인이 쓴 시 ‘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를 싣는 작업이었다. 내가 근무한 옛 전남매일신문(현 광주일보)은 당시 5월21일자로 신문제작을 중단했다. 전두환 퇴진과 민주주의 회복을 외치는 광주시민들을 총으로 쏴 죽이는 것을 기자들이 총총한 귀와 눈으로 보고 들었는데 이 사실을 보도할 수 없으니 어찌 신문을 만들 수가 있었겠는가. 이후 11일 만인 6월2일에 어렵사리 신문을 제작하게 되었다. 이날은 출근 때부터 신문이 발행되기까지 한순간 한순간을 역사의 죄인이 되는 고비로 넘겨야 했다. 출근하자마자 심상우 사장(호남로켓트건전지 회장 겸임, 후에 국회의원, 버마 아웅산 테러 순직, 개그맨 심현섭 부친)이 나를 불렀다. 사장이 나를 호출한 것은 내가 평소에 기자들의 의견을 대변하고 신문사의 언론민주화운동을 주도했기 때문이다. 사장은 매우 진지하게 말했다. “우리 신문은 내 개인의 소유가 아니다. 여러 직원들의 신문이고 더불어 광주전남 시도민들의 신문이다. 오늘 신문은 기자들의 뜻대로, 기자들이 의견을 모아 사실 그대로 제작하길 바란다. 신문사 판권과 인가를 취소당해도 좋다. 사장의 입장에 부담을 갖지 말고 제작을 해 달라”며 말하는 사장의 눈에 눈물이 머금어졌다. 사장의 말을 듣고 나는 다리가 휘청거리며 피가 멈추는 듯 머리와 가슴의 기능이 정지되는 듯 했다. 사장의 말을 그대로 기자들에게 전달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만, 만약 그렇게 제작을 감행한다면 이 신문사는 어찌 될 것인가. 숨을 가다듬자. 생각을 정리하자. 광주상황도 보도하고 신문사도 살릴 방법을 찾아보자. 일단 나는 사장의 말을 전달하지 않기로 했다. 편집국에 돌아가니 부장단 제작회의가 열렸다. 부장단 회의에 보안사 보도지침이 전달되었다. “광주 상황을 일체 보도하지 말고 통신으로만 신문을 제작하라”는 것이다. 아무도 말을 하지 않고 침통하게 눈을 감았다. 사회부장인 내가 편집국장에게 제안을 했다. “너무나 중요한 일이니 전체 기자회의를 열자”고 말했다. 전체 기자회의에서 약 30%정도는 “가족들도 살아야 한다”면서 소극적이고 미온적인 의견을 표명했다. 70%정도의 기자들이 “사실 그대로 전부 보도하자”고 주장했다. 그들은 광주민주항쟁을 사실대로 알리고 사직을 하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밝혔다. 그러나 주어진 상황은 그 것을 넘어 서기가 너무 힘든 상황이었다. 계엄령과 검열에 신문발행 허가취소까지 원척적인 통제로 묶여 있는 상태였다. 어느 누가 총알받이, 화살받이가 될 것인가. 기자들은 고민과 고통 속에 저마다 속죄를 되 뇌이며 제작 방향을 잡았다. 그 날은 제한된 여건상 신문을 4개면만 제작하되 사회면에 광주상황을 간접적인 기사작성 방법으로 가능한대로 보도하기로 했다. 대신 정치면에 광주민주항쟁을 잘 표현할 수 있는 시를 게재하기로 했다. 나는 문순태 부국장(소설가)에게 시인을 선택해 달라고 요청했다. 처음 부탁을 했던 시인의 시가 적합지 못해 다시 선택한 시인이 전남고 김준태 교사였다. 원고 청탁을 받은 김 시인은 1시간 정도 짧은 시간에 “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라는 시를 써서 달려왔다. 그 시는 우리들의 심장을 갈기갈기 찢어버리 듯 처절한 시였고, 광주민주항쟁을, 시민들의 죽어가는 모습을 그대로 표현했다. 전남도청에 설치된 계엄분소 언론 검열실에서 이 시가 통과가 될 것인가? 모두가 망설이고 주저했다. 그러나 “이렇게 많은 광주시민이 목숨을 잃었는데 그런 걱정이 문제인가. 그대로 제작을 하자” 나와 문 부국장, 1면 편집자 윤유석 차장(한겨레신문 이사)이 앞장을 섰다. 사직을 각오한 많은 기자들이 과감하게 힘을 모았다. 그렇게 애간장을 태웠음에도 “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는 검열에서 깎이고 깎여 1백8행의 시가 32행으로 줄었다. 원 제목이 깎여 “아 광주여”만 남았고 “죽음과 죽음 사이에, 피눈물을 흘리는” 등 광주의 통곡을 뜻하는 76행을 모두 깎고 찢어 버렸다. 하지만 몹쓸 검열로 산산조각이 난 이 시가 막상 신문에 실리자 기가 막히게 독자들은 깎여 나간 부분의 뜻까지 헤아려 광주의 비극을 읽었다. 이 시는 전 국민의 심금을 울려 서울에서, 대전에서, 대구에서, 부산에서 몇 십부, 몇 백부를 보내라는 바람에 밤샘까지 하며 신문을 인쇄했다. 이 신문이 광주민주항쟁을 처음으로 전국에 알리는 신문이 되었다. 이날 이후 2~3개월이 지나고 김 시인은 학교에서 해직되고 우리 신문사에서도 8~9명이 강제 해직 되었다. 이중 나와 문 부국장, 윤 차장의 해직 이유는 김 시인의 시를 게재한 것이었다. 이렇게 광주민주항쟁을 전 국민에게 알린 시 “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는 시를 쓴 김준태 시인, 심상우 사장의 헌신적 뒷받침, 피바다가 된 광주를 살리겠다는 기자들의 뜨거운 사명감이 한데 합쳐져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오늘 그때 그 순간을 되돌아보니 “잘 했다”는 생각보다 내 자신에 대한 아쉬움, 광주시민에 대한 미안함으로 마음이 가볍지가 않다. “역사의 역사로써”기사를 쓰는 것이 기자의 소명이라면 그때 더 용기를 내 광주 전부를 썼어야 했는데 하고 자주 후회를 한다는 고백을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다.사진설명 1.2007년초 광주에서 고건 전 총리와 대통령 후보 출마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김원욱사장. 2.1996년 광주매일 전무때 교외 유채 밭에서 3.광주전남기자의 밤을 창설한 공로로 기자협회로 부터 공로패 수상.
광주전남기자협회 14-03-14 조회4547
1년만에 친정 복귀 김영락 kbc보도국장 지난 1년간의 외도(?) 끝에 친정으로 복귀했습니다. 갑작스러운 인사에 사실 ‘어떻게 해 나갈까, 무엇을 해야 할까?’라는 고민이 생각보다 크게 다가왔습니다. 무엇보다 시청자들을 향한 각 방송사들의 전달 방식이 상상을 초월하고 있다는 사실이 부담을 더 크게 했습니다. 펙트에만 충실했던 기존의 방식에서 벗어나 이제는 3D와 DLP(Digital Light Processing) 등 각종 기법과 장비들이 뉴스에 동원되고 있어 저도 눈이 휘둥그레 질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이런 첨단 방식을 뉴스에 도입하는 것을 두고 방송학자와 기자들 사이에서도 여러 논란이 제기돼 왔지만 방송이 변하고 있고 그 물결을 거스를 수 없는 시대가 온 것만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3년 전부터 많은 변화를 가져오고 있는 kbc도 그 흐름의 중심에 서 있습니다. kbc만의 독특한 캐릭터를 만들어 보고 싶고 지금이 적기라고 판단됩니다. 그것이 무엇이 될지 아직은 제대로 설정하지 못하고 있지만 시청자들에게 더 가까이 갈 수 있는 것, 그것을 만들어 보고픈 마음이 간절합니다. 1년 전 취재부장 시절에 기자들 모두가 그동안 생각만 해 왔던 것을 실제로 만들어 낸 경험이 있습니다. 시청자들을 위한 방송이라는 하나의 목표 아래 모두가 최선을 다 해 왔고 그 결과 수많은 대내외 수상 실적을 낸 것은 물론이고 시청률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지금도 그런 분위기는 바뀌지 않고 있다고 자신합니다. 기자 모두가 가지고 있는 초심이 kbc의 가장 큰 강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뉴스라는 하나의 프로그램을 위해 기자 수십 명이 기사를 생산해 냅니다. 한 명이라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그 뉴스는 엉망이 되고 맙니다. kbc가 가장 내세울 만한 것이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kbc에는 선후배 사이의 끈끈한 동료애를 바탕으로 제 역할을 다 해내는, 뉴스가 나가는 시간에 서로를 격려해 주는 따스함이 있다고 자부합니다. kbc는 올해 성년이 됐습니다. 보통 성년이 되면 생각과 행동이 달라진다고 합니다. kbc도 그럴 것입니다. 오직 시청자들을 위해, 최고의 방송을 위해 나아갈 것입니다. 이것이야 말로 kbc 기자들이 가진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kbc는 그것을 위해 달리고 또 달릴 것입니다
광주전남기자협회 14-03-14 조회4790
김기봉 전남일보 국내외 언론환경이 좋지 않다. 지역 언론은 더욱 위태로운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다양한 매체들이 등장하면서 신문의 영향력을 날로 추락하고 있다. 국내 유수의 언론들이 자본에 굴종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언론의 위상이 하락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전남일보 구성원들에게는 모진 풍파를 겪었지만 굳게 버텨온 힘이 있다. 다가올 위기에 대처할 수 있는 충분한 역량이 있다고 자부한다. 기자협회 전남일보지회는 기자 정신을 올곧게 세우는 한편 독자에게 한 걸음 다가서는 따뜻한 신문으로 변신하는데 노력할 것이다. 나아가 기자들의 권익보호와 선후배들의 소통을 위한 가교 역할을 할 것이다.
광주전남기자협회 14-03-14 조회3646
무등일보 류성훈 선후배님들의 뜻에 따라 지난 2년여동안 노동조합 위원장을 맡다가 광주전남기자협회 무등일보 지회장 자리를 물려받게 됐다. 무등일보가 최근 많은 변화와 발전이 있었듯, 우리 지회도 회원들을 따뜻한 품에 안고 함께 보듬아 주는 '넉넉하고 풍성'한 지회로 거듭 날 것이다. 기자협회는 언론인들의 이익단체인 만큼 친목도모가 최우선이라고 생각된다. 선후배님들의 소통 창구 역할에 충실할 것이며, 열악한 취재여건 개선에 앞장서 언론 본연의 업무에 충실할 수 있도록 디딤돌 역할을 하는 신뢰받는 지회로 운영해 나가고 싶다. 나아가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아 회원 권익보호도 게을리 하지 않을 계획이다. 회원들의 참여와 소통을 통해 따뜻하고 즐거운 지회로 한발짝씩 전진할 것이다.
광주전남기자협회 14-03-14 조회3678
오승현 남도일보 차장 제39대 광주전남기자협회 일원이 돼 영광입니다. 또 ‘39’란 숫자는 저에게 딱 와 닿습니다. 제 나이와 같아서 말입니다. 제 나이만큼 광주전남기자협회가 있었기에 제가 기자생활을 계속하는 한 같이 호흡 할 것으로 보이지만, 앞으로 제가 넘어야 할 산들이 많을 것으로 보여져 어깨가 무겁습니다. 광주전남기자협회가 여러 선후배 기자들의 아픔과 기쁨을 같이 할 수 있게 남도일보 신임 지회장인 제가 작은 힘이나마 보탤 수 있게 노력하겠습니다. 또 다른 지회도 마찬가지겠지만 다들 어려운 경제사정에 구성원들간 서먹하고 서로 소홀해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화합을 위해 더욱 힘쓰고 싶습니다. 아무쪼록 다같이 잘살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하는 나침반 같은 지회장이 될 수 있도록 앞으로 더욱 잘배우겠습니다.
광주전남기자협회 14-03-14 조회3685
전윤철 광주MBC 또다시 한 해의 이름이 바뀌고, 이 글을 쓰는 제 이름 앞에도 광주전남기자협회 광주MBC지회장이라는 글자가 더해졌습니다. 그냥 단순한 몇 글자로만 생각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광주MBC가 창사 50주년을 맞는 해여서 그런지 그 무게가 썩 가볍지만은 안습니다. 신임지회장으로서 무엇보다 올해는 구성원 간의 화합에 중점을 둘 것입니다. 일하는 분위기가 좋은 직장에서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나오고, 조직의 경쟁력도 살아날 수 있습니다. ‘50년의 동행, 100년의 희망’이라는 창사 50주년 슬로건에 걸맞은 광주MBC 보도국을 위해 작은 힘이나마 보탬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오늘 늘 지니고 다니는 수첩 한 귀퉁이에 이렇게 적어봅니다. ‘멀리 가려거든 함께 가라. 푸른 숲이 되려거든 함께 서라’
광주전남기자협회 14-03-14 조회3592
박광수 여수MBC 연초부터 기자들에게 일주일씩 휴가를 가라고 합니다. 한술 더 떠서 2월부터는 한달씩 돌아가면서 쉬라네요. 충분한 휴식과 재충전이 보장되는 웰빙 보도국 이야기로 들리십니까? 전혀 아닙니다. 전자는 연차 휴가비를 삭감 당한 뒤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할당 받은 보상휴가이고 후자는 인건비 줄이기 차원에서 강제 안식월을 시행하기 위한 사측의 압박입니다. 지역 MBC이야기입니다. 지역 언론이 언제고 위기 아닌 적 있었습니까마는 그나마 곁불 정도는 쬐온 지상파 방송사 마저 이런 처지가 되고 말았네요. 더 큰 문제는 궁핍해진 살림살이 그 이면입니다. 협찬사를 다루는 기사에 회사가 극도로 민감해지고 자치단체장에 대한 지적에 국장이 심히 불편해 합니다. '그래도 MBC가 어떻게!' 라는 반문은 그저 공허하게만 들리는 분위기네요. 이래저래 지회장 자리가 새삼 큰 부담으로 다가오는 지금, 문득 영화 변호인의 대사 한 줄이 생각납니다. '이러면 안되는 거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지회장을 맡는동안 최소한 이 한마디 정도는 언제든 내뱉을 준비는 해 놓고 살아야겠습니다.
광주전남기자협회 14-03-14 조회3772
류성호 kbc 얼렁뚱땅 KBS광주전남 지회장을 맡은 류성호입니다. 타사 회원들이 KBS 기자들을 두고 ‘샌님같다’고 표현하는 얘길 듣곤 합니다. 기자가 가진 권한과 역할이 무엇인지 잘 아는, 우리 샌님같은 KBS 기자님들 1년 동안 잘 모시려고 합니다. 지역에서만큼은 ‘역시 KBS다’라는 소리 들을 수 있도록 기자사회에서 끊임없이 견제하고 소통하려 합니다. ‘KBS가 바로서야 언론이 바로 서고, 대한민국이 바로 선다’는 일념과 긍지로 살아가겠습니다. 응원․격려 부탁드립니다.
광주전남기자협회 14-03-14 조회3604
뉴시스 송창헌 차장 뉴시스 광주전남본부가 '뉴시스 지방본부 1호'로 닻을 올린 지, 지난해로 꼬박 10년이 됐다. 지나간 10년은 황량한 허허벌판에서 '작은 집터', '비빌 언덕' 하나를 마련하고자 몸부린친 시기였다. 끈끈한 조직력을 무기로 한날 한시도 통신기자 취재혼을 잊지 않고, 허리띠 졸라 매고 달려온 10년이었다. '청마의 해'인 올해는 또 다른 10년을 준비하는 출발선이기도 하다. 당장 안으로는 직원들의 복지증진과 취재 여건 개선에 가능한 모든 역량을 모을 계획이다. 시대정신과 지역 발전을 늘 가슴에 담고, 촌각을 다투는 취재전선에서 뜨거운 열정을 태우도록 지렛대 역할에 충실하겠다. 또 밖으로는 광주전남 기자협회 회장사라는 격에 걸맞게 기협 발전과 운영 활성화에 힘을 보탤 각오다.
광주전남기자협회 14-03-14 조회3716
박간재 광주전남편집기자협회장(전남일보 편집부장) 회사 평균 20명이 넘던 편집기자들 다 어디로 갔을까. IMF당시 구조조정으로 짤려 나갔고, 업무과다에 다른 직업 찾아 뿔뿔히 흩어졌다. 업그레이드된 편집 시스템이 도입되자 또 밀려났고 긴축경영에 따른 인원절감을 천명한 회사 방침에 또 몇 명이 떠나갔다. 취재부서와 전산ㆍ비편집국 역시 같은 아픔을 겪었다. 변명하자면, 이런 전차로 그동안 광주ㆍ전남편집기자협회가 유명무실해 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기자협회에 광주ㆍ전남편집기자회 자리까지 마련해 준 세심함에, 편집기자의 중요성을 간파(?)한 구회장의 혜안에 감사할 따름이다. 이제야 제자리 찾은 편집기자회가 순항할 수 있도록 회원사 간 만남의 시간을 자주 갖도록 하겠다. "거창한 구호는 필요 없을테고 이제 판 깔아졌으니 자주 모태 봅시다"
광주전남기자협회 14-03-14 조회3528
나명주 광주전남사진기자회장 이번 출범에 발맞춰 사진기자회 또한 모두의 참여와 소통, 그리고 화합을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광주전남사진기자회는 2014년 기자들간의 친목단체의 성격에서 벗어나 시도민들이 함께 공감할 수 있는 활동들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하루하루 지면 떼우기에 바쁜 사진기자가 아닌 주변을 돌아보며 회원 모두가 힘을 합쳐 사회 공공의 이익을 위한 사업들도 구상중에 있습니다. 그러한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 지난 해 12월 무각사 로터스 갤러리에서 개최한 '나눔 사진전'입니다. 사진전의 수익금 전액을 지역 불우 청소년에게 전하며 회원들 모두가 기자에 대한 사명감과 책임감을 새삼 느끼는 기회가 됐습니다. 또, 매년 상반기 개최하는 보도사진전에는 지난 해 광주와 전남지역에서 일어났던 사건, 사고 및 미담 등을 전시해 시도민들로 하여금 지난날의 향수와 미래에 대한 나름의 삶의 방향을 제시해주는 자리를 마련하고 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기자협회와 공동으로 이 사회와 소통할 수 있는 '나눔'의 장을 마련해보는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다시 한번 광주전남기자협회의 출범을 축하드리며 모두와 소통하고 화합하는 협회 만들어가시길 바랍니다.
광주전남기자협회 14-03-14 조회3345
양창희 KBS광주 기자 '민간인'에서 겨우 '기자'가 된 지 몇 달, 아직도 누군가 저를 '양기자'라고 부르면 화들짝 놀라곤 합니다. 이름을 걸고 결과물에 책임을 지는 직업, 기자라는 이름의 무게를 항상 느끼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부담이 큰 만큼 제대로 해내고 싶은 맘도 간절합니다. 자기소개서에서 기자를 '기록하는'[記] '놈'[者]이라고 규정했습니다. 멋모르고 쓴 말이지만 의외로 일리 있는 정의였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알아야 할 진실을 발굴해 기록하는 기자가 되겠습니다. 뉴스가 있다면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뛰어가는 기자가 되겠습니다. '기자'라는 이름을 항상 무겁게 느끼면서도, 광주전남기자협회 소속임을 당당하게 밝힐 수 있는 기자가 되겠습니다.
광주전남기자협회 14-03-14 조회3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