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언론상 수상소감] 취재보도-전남일보 ‘80년 5월의 학생들…’ 외 13편
조회 : 206 / 등록일 : 23-10-04 16:38
“언론의 무게를 견디며 계속 고민하겠다”
취재보도 전남일보 ‘80년 5월의 학생들…’ 외 13편
오월정신 강조하면서도 무관심한 교육계 태도 취재로
청소년·청년 열사 재조명… 기념시설 정비 등 끌어내
“교내 기념비는 항쟁 기간 희생당한 모교 선배들을 기억하게 하는, 후배들의 큰바위얼굴입니다.”
취재차 참여했던 교원 역사탐방에서 들은 지역 역사학자의 말이 뇌리에 박혔다.
지난 2019년 지금은 고인이 된 전두환 씨의 사자명예훼손 혐의 재판이 광주지법에서 열렸다. 당시 광주 동산초 학생들이 학교 복도로 나와 재판에 출석하는 전 씨를 향해 ‘전두환은 물러가라’를 외치는 모습이 언론에 노출되면서 큰 화제가 됐다.
특히 동산초가 6월 항쟁에 참여한 이한열 열사 모교라는 사실도 밝혀지며 해당 학생들의 행동이 더욱 의미 있게 조명됐다.
하지만 동산초에는 이 열사를 기억하는 기념비나 작은 추모 공간조차 없었다.
이 열사가 모교 출신이라는 사실을 역사 수업 때 간단히 듣거나 언론보도를 통해 알게 된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역사학자는 열사를 대하는 지역 교육계의 무심한 태도를 지적했다.
여기서 나의 질문이 시작됐다. 과연 5·18민주화운동은 어떨까.
5월이 다가오면 광주지역 각급 학교들은 5·18계기교육을 진행하거나 추모 행사를 진행하는 등 분주해진다.
하지만 정작 5·18 정신의 전국화와 세계화를 강조하는 광주시교육청은 5·18 당시 학생 참여자들의 모교 명단조차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했다. 상대적으로 주목도가 덜한 전남지역도 다를 바 없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모교 출신 희생자를 파악하지 못해 명예졸업장 수여에 어려움을 겪는 학교도 있었다.
본보는 5·18 당시 국가 권력에 의해 희생당했음에도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한 청소년·청년 열사들을 조명하고, 이들의 정신을 미래세대가 계승할 수 있도록 교내 기념시설 정비 캠페인을 진행했다.
광주지역 초·중·고는 물론이고 대학, 나아가 전남지역까지 두루 살펴 그 의미를 더하고자 했다. 먼저 취재진이 찾아간 광주 양동초등학교에는 5·18 당시 행방불명된 7살 이창현 군의 학적 기록도 남아있지 않은 상황이었다. 양동초 측은 그간 5·18단체 등으로부터 숱하게 명예졸업장 수여 등을 제안받았지만, 제적부가 없어 수 년간 추진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다행히 본보 취재 과정에서 이 군의 아버지가 지난 1988년 5·18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을 신청했을 당시 양동초로부터 이 군의 제적 확인증을 발급받아 제출한 서류를 통해 43년 만에 이 군의 제적을 확인했다. 희생자를 기리는 기념비 등이 마련돼 굳이 5월이 아니더라도 일상적인 계기교육을 진행하는 학교도 많이 있었다.
많은 청소년 희생자가 나왔던 전남 지역도 조명했다. 광주와 달리 전남은 이들에 대한 자료나 연구가 전무했다.
속절없이 시간만 흘러 진상규명을 위한 증언자 찾기는 더욱 어려워졌고, 희생자들의 이름은 출신 학교에서조차 기억되지 못하고 있었다. 본보는 이들이 5·18민주화운동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 적지 않음에도 제대로 된 평가, 연구가 이뤄지지 않았던 점에 대해 주목했다. 수 주에 걸친 취재를 통해 지역별 피해자 명단을 확보했고, 출신 학교를 찾아가 학술 연구와 기념공간 조성 작업을 건의했다.
아울러 취재 과정에서 만나거나 보도를 통해 연락이 닿은 또 다른 취재원들이 생겼고, 이들의 목소리를 ‘5·18 그날의 또 다른 기억’이라는 소기획으로 마련했다. 덕분에 그간 밝혀지지 않은 이야기도 함께 전달할 수 있었다.
5년 차 이하 기자들로만 구성된 사회부의 노력에 박수를 보내준 것일까. 무거운 상패를 받아든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다시 펜이 무거워졌다.
민주화를 위해 스러져 간 별들이 미래세대들의 가슴 속에서 오래도록 빛날 수 있도록,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계속 고민하겠다. 양가람 전남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