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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역사가'로 살아남자!

작성자 : 광주전남기자협회 (115.23.95.***)

조회 : 4,899 / 등록일 : 13-05-24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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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고교졸업 50주년 모임을 가졌다. 오월 신록 속에 부부동반으로 다산초당, 왕인공원, 영랑생가 등을 돌며 12일 남도여행을 했다. 몇 번 가본 곳들이지만 볼수록 더 새롭다. 서울서 온 친구들은 버스 두 대, 광주 친구들은 버스 한 대에 탔다. 고향인 전라도보다 타향인 서울에 생활터전을 잡은 친구들이 두 배나 됐다.

 오랜만에 날 새며 얘기를 나눴다. 신변잡담부터 세상살이까지 이야기가 번졌다. 다들 이젠 현역에서 떠난 '왕년에' 수준이라 과장되기는 할망정 시비꺼리는 되지 않는다.

 수십 년 관()을 상대로 사업을 한 어느 친구는 중앙관서를 드나들며 느꼈던 분위기를 우스개 섞어 털어놓았다. 'YS시절엔 남의 집에 가서 밥 얻어먹듯, 눈치 보며 지역 연줄 찾아 말소리도 소곤소곤 했는데, DJ때는 마치 내 집에 들어 온 듯, 전라도 사투리가 들릴 정도로 목소리가 커졌다. 참여정부가 들어서자 남도 목소리가 줄어들더니 MB시절에는 아예 힘을 잃었다.' 전라도 출신으로 서울에서 돈벌이를 하다 보니 지역차별이 정말 실감났을 거다. 어찌 돈벌이 뿐이겠는가. 권력서열에는 더 큰 차별이 있다. 너도 나도 말이 길어졌다.

 지역발전이든 권력쟁취든 남도가 차별받고 뒤쳐진 이유는 무얼까. '뛰어난 지역인재가 없다. 예전처럼 개천이나 둠벙에서 용이 나오는 시대는 지났다.' 세태를 탓하던 한 친구가 "언론이 문제다."라고 말머리를 바꾸었다. 언론이야 약방에 감초처럼 두들겨 맞는 자리에도 빠지지 않지만 '사람 못 키우는 것도 언론 책임이라니?' 좀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자리에 언론계출신은 나뿐이었다. 일부 권력층이 잘못을 저질러놓고 사회의 지탄을 받게 되면 '언론잘못'이라고 둘러 붙이곤 하는데 거기에서 배웠나.

 "얼굴이 못생긴 사람이 거울을 쳐다보면서 자기 얼굴 못난 것은 생각 않고 '거울이 잘못되었다'고 성질내면 되겠나?" 거울 얘기로 얼버무리며 넘겼으나 속은 후련치 않았다. 우리 언론은 과연 거울 역할을 잘 하고 있나! '못난 얼굴은 못나게, 잘난 얼굴은 잘나게' 얼굴들을 생긴 그대로 잘 비춰주고 있나!

 국민 혈세를 빼내먹는 도둑들을 찾아내 물어뜯고 쫓아내는 파수견 역할은 얼마나 했나! 어둔 밤 길 잃고 헤매는 서민들의 앞을 밝혀주는 횃불 역할은 잘 했나! 잘못된 길로 빠지지 말라고 소리치며 두드리는 목탁 역할은 했던가! 삼십년 기자생활을 한 나는 삼십년 동안 무얼 했나!

 '칼럼니스트'. 1971, 기자 길로 나선 나의 목표였다. 세상살이를 보는 새로운 시각, 세상문제를 풀어가는 대안과 제언으로 독자들과 소통하고 독자들을 위로하고 독자들에게 힘을 주고 싶었다. 그래서 하루살이 글쟁이가 아닌 '하루 역사가(歷史家)'로 살아남고 싶었다. 19831116일 첫 번째 칼럼을 썼다. 2001년 신문사를 떠난 후에도 멈추지 않았다. 지금도 열심히 쓰고 있다.

 그렇게 많이 썼다면서 무엇을 이루었나. 누구를 감동시켰나. 무엇을 바로잡았나. 횃불 아니면 촛불이라도 밝힌 일이 있던가. 글 한 편 한 편이 하나의 돌이라면 돌탑이라도 쌓았을 터인데 남는 게 무어냐. 스크랩북 댓 권이 전부인가.

 "역사는 기록이나 유물만이 아니다. -마치 소화된 음식같이, 효과를 나타내는 신체운동같이 산 생명으로 존재 안에 남아 있어서 그 체격으로, 얼굴 생김으로, 마음씨 성격으로, 풍속신앙으로 되는 것이다." 함석헌 선생의 말씀을 새기며 자위한다. 나의 칼럼도 한 모금 물처럼 공기처럼 소화된 음식처럼 순간순간이나마 누군가의 존재 안에 생기를 불어 넣었으리라 믿는다.

 광주에 '오월'이 왔다. 돌이켜 보니 한 가지는 기억난다. '분수대'를 지킨 일이다. 1988510일자 '분수대를 살리자'라는 칼럼이다. 광주일보 사회부장 때였다. 당시 전남도청 앞 분수대는 19805월 민주항쟁의 대표적 상징이었다. 시민들이 민주를 절규하던 발언대였다. 피 흘리는 현장을 듣고 지켜본 증언대였다. 민주화운동의 구심점이었던 그런 분수대를 털어내고 그 자리를 뻥 뚫어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가는 자동차출입로로 만든다는 게 광주시의 계획이었다.

 "-예루살렘에 있는 통곡의 벽은 로마병정에 의해 파괴되다 남은 그냥 길이 300m의 하얀 돌벽일 뿐이다. 세계에서 관광객이 몰려들고 수많은 참배객들이 그 돌을 어루만지며 통곡을 하는 것은 돌벽의 겉모습 때문이 아니다. 돌벽이 지닌 역사의 숨결을 느껴보고 싶어서이다.-"

 광주시는 사흘 후인 513'분수대를 원형대로 보존한다'고 발표했다. 돌탑은 못 쌓았어도 분수대를 허무는 것은 막은 셈이다. 살아난 분수대는 지금도 '오월'이 오면 분수대신 활화산같은 열기를 뿜어낸다.

 뉴스는 기자가 써야 뉴스이다. 뉴스도 역사가가 쓰면 역사가 된다. 하루 역사를 하루하루 쌓아올리면 백년 역사가 된다. 숨 쉬듯 밥 먹듯 멈추지 말고 쓰자. 그래야 살아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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