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만에 다시 ‘반성’과 ‘책임’을 묻다
조회 : 2,256 / 등록일 : 20-06-02 14:05
40년만에 다시 ‘반성’과 ‘책임’을 묻다
<사진설명> 지난 4월 27일 5·18 당시 계엄군 헬기 사격을 주장한 故 조비오 신부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광주 동구 광주지방법원에 출두한 전두환 씨를 향해
김철원 광주MBC 기자가 질문을 하고 있다./류형근 뉴시스 광주·전남취재본부 기자
주어진 시간 10초, 허락된 공간 10미터
“이렇게나 지은 죄가 많은데 왜 반성하지 않습니까?”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는데 왜 책임지지 않습니까?”
“왜 책임지지 않습니까?”
4월 27일 전두환 피고인이 재판에 출석하는 날, 그에게 마이크를 들이댈 임무가 주어진 나에게 허용된 시간과 공간은 딱 저만큼이었다.
광주지법에 도착해 차에서 내린 전두환이 출입구까지 10미터 가량 이동할 동안 10초 남짓한 시간에 던질 수 있는 질문은 무엇이어야 할까? 숙제를 받아든 나는 고민에 빠져들었다. 사자명예훼손 재판에서 전두환이 처음 광주지법에 출석한 2019년 3월 11일, 기자들이 던진 질문이 워낙 좋았기 때문이다.
전두환으로부터 ‘왜 이래’라는 짜증섞인 말을 이끌어낸 KBC 최선길 기자의 아홉음절, 두어절짜리 질문 ‘발포명령 부인합니까’는 질문의 내용으로서도 그렇고 길이로서도 그렇고 이이상 더 좋은 질문이 없을 정도로 탁월했다.
전두환의 반응을 이끌어낸 저 탁월한 질문은 역사적으로도 길이 남게 됐다. 그건 1년만에 법정에 출석하는 전두환에게 질문해야 할 임무를 맡은 나에게는 엄청난 부담으로 다가왔다. 고려해야 할 것들이 한두가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5·18의 핵심 의제를 어떻게 담을 것인가’,
‘짧은 시간과 이동 공간에 걸맞은 간결함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나중에 두고두고 회자될 강렬한 단어는 무엇이어야할까’
‘가족들이나 변호사가 절대 대꾸하지 말 것을 전두환에게 주문할텐데 그것을 어떻게 뚫고 반응을 이끌어낼 것인가’.
‘과도한 경어를 배제하면서도 품위를 잃지 않을 단어들은 무엇이어야 할까’
그렇게 해서 나온 문장은 ‘반성’과 ‘책임’을 키워드로 한 이 두문장이었다.
“이렇게나 지은 죄가 많은데 왜 반성하지 않습니까?”
“광주시민들을 죽여놓고 왜 책임지지 않습니까?”
첫 번째 문장의 경우 비단 5·18 뿐만 아니라 5공시절과 퇴임 이후 지금까지도 저지르고 있는 각종 범죄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는 문장이었고 두 번째 문장은 5·18의 직접적 책임을 묻는 문장이었다.
하지만 고민이 생겼다. 이 재판의 경우 5·18 헬기사격이 쟁점이긴 하지만 전국에서 생중계로 지켜볼 국민들까지도 고려해야 한다는 데 생각이 미쳤기 때문이다.
그래서 “광주시민들을 죽여놓고 왜 반성하지 않습니까?“의 문장을 버리고 전두환 재임 시절 때 죽은 이들까지 포함해 목적어를 ‘광주시민’에서 ‘수많은 사람들’로 바꿔서 연습을 진행했다.
혼자 중얼거리며 연습을 하던 그 때 전두환을 실은 차가 광주요금소를 통과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마이크를 쥔 손에 땀이 올라왔다.
또 하나의 고민이 생겼다. ‘수많은 사람들을’ 로 할지 ‘수많은 사람들이’로 할지였다. 전두환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죽었지만 전두환 본인이 직접 흉기를 휘둘러 사람을 죽인 것은 아니었기에 5·18에 직접 관계가 없지만 이 뉴스를 보고 있을 전국의 시민들이 공감할 수 있게 해야 했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을 죽여놓고 왜 책임지지 않습니까?“의 문장은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는데 왜 책임지지 않습니까?“로 바뀌었다. 마침내 전두환을 실은 대형 고급승용차가 내 앞에 멈춰섰다.
/김철원 광주MBC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