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의 시대’에도 5·18은 이어져야 한다
조회 : 1,729 / 등록일 : 21-06-03 15:10
‘상실의 시대’에도 5·18은 이어져야 한다
40년 넘게 강조돼 온 오월정신 가치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방향 고민
선수는 바뀌어도 책임감은 한마음
<사진설명> 41주년 기념식을 취재하는 광주전남기자협회 풀단 기자단
어김없이 돌아온 5·18민주화운동 41주년을 즈음해 인터넷상의 5·18 기사들을 클릭했다가 힘이 빠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특별히 논란거리를 다룬 기사가 아닌데도 찬물을 끼얹는 댓글들이 어김없이 달려서다. ‘지겹다’, ‘지긋지긋하다’. 물론 사람인 이상 피로감을 느낄 수도 있고 말할 수도 있겠다. 나 역시 40년 뒤 5·18 80주년때는 “에잉 지긋지긋하다 앵간히 해라. 꼴까닥”할지 모를 일이다. 그만큼 40년은 분명 긴 시간이다. 그렇지만 그 세월이 평범한 사람과 똑같이 치부된다면 아무래도 불공평하지 않나. 5·18은 적어도 20년간을 전국적인 멸시 속에서 가해자를 지목하고 싸워왔다. 10년간은 비교적 평화로운 시절도 있었으나 다른 국가유공자들과 마찬가지로 권리를 되찾는 시간이었다. 다시 10년간은 역사를 되돌리려는 시도가 반복되기에 또 그에 맞서 싸웠다.
이런데도 불문곡직(不問曲直), 옳고 그른지 따져보지도 않고 무작정 지겹다는 식의 거부감에는 도무지 반박할 의욕도 나지 않는다. “나는 그런거 잘 모르겠고 아무튼 듣기 싫어부러.” 이런 의견도 ‘개취(개인의 취향)’로 존중해서 우리 사회가 얻는게 무엇일까. 아직 누가 그때 총을 쏘라고 했는지, 누가 시신을 파묻고 다시 파내 옮기라고 했는지, 불태웠는지 바다에 빠트렸는지 아니면 어딘가에 아직 묻혀 있는지 우리는 모른다. 하물며 70년 전 6·25때 숨진 순국선열의 유해도 한 구 한 구 명예를 다해 찾는 형편에 41년 전 사건에 피로감을 드러내는 지금 시대는 ‘상실의 시대’가 분명하다. 사회정의를 강조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곤란하기 이를 데 없다. 싫다는데 어쩔 것인가.
‘상실의 시대’는 취재 현장에서도 목격된다. 40주년이라고 해서 유족에게는 39주년이나 41주년보다 더 특별할리 없다. 그렇지만 의미가 남달리 부각된 지난해 40주년을 겪고 난 올해는 다들 방향성을 고민하는 모습들이 보였다. 광주 언론은 다들 “올해는 무엇을 해야 하나”하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5·18 41주년을 맞이했다. 진상규명의 과제도 거진 언급된 것 같고, 조사는 5·18 진상규명 조사위원회가 꾸려졌으니 믿고 기다릴 따름이다. 새로운 진상규명 과제 발굴? 가능하면 좋지만 어느 세월에 찾으랴. 조사위의 출범으로 이미 5·18의 주요 전장도 전국으로 확대됐다. 얼마 전 KBS의 다큐멘터리 ‘나는 계엄군이었다’를 보았을까. 중앙 언론사의 묵직한 한 방이 나올 때마다 광주에서 할 일은 무엇일지 고민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광주의 모두가 같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광주의 비극을 알리는 것마저 이제는 외주를 줘야 하는가?
그런 가운데 올해 41주년 5·18 기념식에서는 광주 언론사의 5·18 취재 담당도 상당수 새얼굴로 바뀌었다. 전남일보 김해나 기자나 뉴스1 이수민 기자 등 1~2년차 기자도 풀단에 투입돼 한 시도 쉬지 않고 기록했다. 그들은 처음 맞는 5·18을 최전방에서 보낸 셈인데 평년과 달리 기념식 규모도 축소되면서 여건이 좋지는 않았음에도 최선을 다했다. 그런 노력과 책임감이 고마웠고 항시 이어지길 바랐다. 매년 이날 죽은 자식 묘를 찾아 넋두리 하는 부모의 마음이 작년과 올해가 다를 리 없지 않겠나. 또 유명 정치인들이 찾지 않는 묘라고 해서 그냥 지나쳐서 되는 것도 아니다. 이날이 정치인을 위한 행사가 아님을 5·18을 아직 모르는 세대에 똑바로 알려야 하는 의무가 있다. 서울은 모르되 광주의 언론이라도 그래야 한다.
5·18진상조사위의 모 과장이 조사위로 가기 전 한 말이 기억난다. 광주는 5·18 담당이 너무 자주 바뀌어서 아쉽다는 것이다. 5·18 취재의 현주소를 우회적으로 지적하는 말로 들렸다. 다시 서두로 돌아가서 5·18 기사에 대한 피로감을 해소하는 것도 결국 바뀐 선수들의 몫이 될 수 밖에 없다. 유가족이 아닌 정치인을 찍고, 이미 나온 내용을 판박이로 담은 기사가 독자의 마음을 움직일 리 없다.
지겨움을 느끼지 않도록 찾고 또 찾는 것은 기자의 몫이다. 그 다음으로는 독자들에게 지겹다는 말 대신 이제 막 우리나라의 현대사에 눈뜬 세대에게 그간 있었던 이야기를 전해주십사 당부드릴 수 있겠다.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계승이 아니겠는가. 상실의 시대에 우리가 책임지고 맡아야 할 일이 있겠다는 생각이다.
/서충섭 무등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