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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말 항꾼에 집담회] ‘오메’를 ‘어머’로 표현한들 온전한 뜻 전달 안 돼

작성자 : 광주전남기자협회 (119.200.132.***)

조회 : 254 / 등록일 : 23-07-21 15:31

오메어머로 표현한들 온전한 뜻 전달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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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우리말의 위상을 되찾기 위한 언론의 노력은 광주문화방송 사례가 대표적이다. 광주문화방송은 576돌 한글날을 맞은 지난해 10월부터 사명을 광주MBC’ 대신 우리말로 표기하면서 신선한 변화를 주고 있다. 김낙곤 광주문화방송 대표는 방송사명 영문 표기는 군사 정권이 힘을 불리기 위한 수단의 하나로 시작했다우리말과 우리글에 대해 올바르게 대접하려는 노력을 꾸준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23일 남구 구동 광주문화재단 아트스페이스에서 열린 전라도말 항꾼에 집담회에 참여한 7명은 우리말과 지역 언어를 사랑하는 방법을 끊임없이 고민해 온 이들이다.

 발제에 나선 손희하 전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 박은영 KBS광주방송총국 작가, 김철원 광주문화방송 뉴스팀장은 사투리와 우리말에 대한 폄훼의 역사를 들여다보고 이를 극복할 방법들을 제안했다.

 발제자들과 토론을 함께한 지정남 배우, 노병하 전남일보 사회부장, 이수민 뉴스1 기자 등도 우리말과 지역 언어를 고스란히 후대에 전할 방법에 대해 진중한 질문을 던지고 자기 생각을 얘기했다.

 첫 발제에 나선 손희하 교수는 지역어, 국어·문화의 세포·실핏줄이라는 주제를 두고 일제강점기 한 까까머리 소년의 사진 한 장을 보여주며 말문을 열었다.

 사진 속 학생은 교실에서 표준어를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저는 방언을 썼습니다라고 쓴 팻말을 들고 벌을 받고 있었다.

 손 교수는 막힘없는 소통을 명분으로 한 표준어의 탄생 과정을 들여다봤다.

 그는 제국주의·중앙 집권주의가 등장하면서 의사소통을 위한다며 시민들에게 표준어 사용을 강요해 왔다식민지배자가 피식민지인에게 지배어를 강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손 교수는 나라와 지역을 몸과 세포의 관계에 빗댔다. 그는 세포가 모여 우리 몸을 이루듯이 지역어가 모여 우리말을 만든다말을 잃으면 조상 대대로 축적한 문화를, 나아가 국가를 잃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표준어는 인류의 행복을 위해 만들어졌다면서도 오히려 노년층의 행복권을 짓밟는 모순을 낳았다유네스코의 문화와 언어 다양성 보존 노력도 이 같은 과정에서 비롯했다고 덧붙였다.

 손 교수는 일상에서 지역민들이 쓰는 지역 말은 지역 방송과 지역 신문에 우선 반영돼야 할 것이라며 판소리 호남가를 21세기 서울말로 부른다고 바꿔 생각해 본다면 문화를 제대로 표출할 수 있는 언어가 어떤 모습이어야 할지 가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KBS광주방송총국의 15년 장수 다큐멘터리인 남도 지오그래피를 만드는 박은영 작가는 삶의 언어, 표준은 없다라는 발제를 들고나왔다. 이 방송은 원고와 자막, 낭독까지 모두 전라도 말로만 채운다는 원칙을 지키고 있다. 평생 지역 언어를 사용해 온 출연자의 삶에 대한 존중을 담기 위해서다.

 이 다큐멘터리는 최고 시청률 15%를 기록하고, 평균 시청률 8%를 유지하며 동 시간대 변함없는 인기를 끌고 있다.

 사투리의 맛을 살린 잡지 전라도닷컴을 만든 황풍년 광주문화재단 대표는 전라도닷컴의 말과 글, 분위기를 안방극장에 옮기기란 쉽지 않은 일이라 생각했다면서도 방송이 나간 뒤 이런 우려는 씻은 듯이 사라졌다고 언급했다.

 지역 언어를 고집하는 이 방송은 지역 언어는 방송 언어로 부적절하다는 심의에 부딪혀 제작 초기에 어려움을 겪었다.

 박 작가는 남도 지오그래피가 지금의 모습을 찾는 과정에서 겪어온 심의 변천사를 소개했다. 그는 방송 심의에서 쟁점은 사투리의 자막 표기였다. 출연자가 사투리로 말을 하더라도 자막 표기는 표준어로 고쳐 쓰라는 심의 결과가 나왔다. 나중에는 한발 물러서 사투리 자막을 고수할 거라면 시청자 이해를 돕기 위해 괄호 안에 표준어를 함께 쓰라고 했다“‘표준어를 사용합시다라는 내부 지침이 있는 KBS에서 사투리 방송을 지켜내는 건 쉽지 않았지만 의지를 꺾지 않은 덕분에 남도 사투리의 구수함과 친근감을 시청자들에게 오롯이 전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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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언론부터 지역어 우선 사용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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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남도 지오그래피에 이달의 PD’상을 안긴 한국PD연합회 심사위원회는 이 방송에 대해 전라도 지역민의 생생한 삶의 모습과 구술이 향후 지역 문화사의 중요한 아카이브 역할을 할 것이라며 다매체 시대 성공한 로컬 프로그램으로 지역 공영방송의 존재 가치를 다시금 되새겼다고 평가했다.

 박 작가는 오메어머로 바꿨을 때를 가정해 보자고 했다. 그는 “‘오메! 맛난그~’ ‘오메 오메! 징허니 반갑소’ ‘오메! 어짜쓰끄나’ ‘오메! 난리가 나브럿시야’ ‘오메! 고것이 시방 뭔 소리당가등을 말할 때 오메는 각자의 쓰임이 다르다표준어 어머는 이 말이 함축하는 뜻을 담기에는 그릇이 작다. 가장 다양한 세계가 가장 강한 세계임을 알았으면 한다고 말하며 마무리했다.

 김철원 광주문화방송 뉴스팀장은 광주문화방송, 6개월의 실험발제에서 지역민들의 생생한 말을 담은 뉴스 방송분을 함께 보며 청중의 이해를 도왔다. 김 기자는 방송 뉴스에서 아나운서와 기자가 사투리를 써도 되는가에 관한 판단은 아직 내리기 힘들다면서도 광주문화방송은 올해 10대 기획의 하나로 우리말과 지역 말을 더 사용하자는 데 중론을 모았다고 말했다.

 그는 말과 글에 계급, 우열이 어디 있겠느냐마는 한글과 영어중에서는 대체로 영어가 우위에 있다한글과 한자중에는 한자, ‘사투리와 표준어중에는 표준어를 우선시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사투리를 온전한 우리말로 받아들이지 않는 마음가짐은 방송 보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취재원이 줘쌓더라고요또는 포도시라는 말을 쓴 경우가 있었습니다. 정작 방송분 자막에서는 이들 표현을 줘서 하더라고요로 바꾸거나 아예 생략했습니다. 이처럼 지역 말을 쓰지 않으면 지역소멸을 부추긴다는 점을 알아야겠습니다.”

 광주문화방송은 우리말과 지역 말을 살리기 위한 실험을 하고 있다. ‘정체가 심합니다라는 관용적 표현 대신 길이 꽉 막혔다고 쓰는 등 우리말을 먼저 쓰고, ‘포도시’ ‘무담시’ ‘항꾸네’ ‘오메등 지역 말을 살려 쓰자는 것이다.

 한글 사명을 쓰고 토론회·집담회를 열어 정당성을 알리는 것도 이 같은 노력의 하나다.

 김 기자는 우리말·지역 말 살리기가 실험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언론사 지침서(스타일북)를 만들어 지속 가능한 지역 말 사용 환경을 만들고, 기자협회 등 직능단체는 지역어 사용원칙을 만들거나 지역어 사용 독려 운동을 하는 등 의지를 드러내야 한다고 말했다.

 발제 뒤에 이어진 토론에서는 표준어의 첨병 노릇을 하는 언론에 대한 성찰과 우리말을 두고 벌어진 세대 간 격차 등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말바우 아짐지정남 배우는 전라도말의 깊고 따순매력을 자랑하며 무의식 속에서 사투리를 안 쓸라고 자기검열을 허고 있는 것이 자존감에도 영향을 주겄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노병하 전남일보 사회부장은 사건 기사뿐만 아니라 기사 작성 단계에서부터 사투리를 표준어로 바꿔 송고하는 분위기가 있다젊은 층이 지역어를 써야 할 만한 가치를 언론이 전파할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알릴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태어나 5년째 광주살이를 하는 이수민 뉴스1 기자는 취재 과정에서 살아 꿈틀대는 전라도 말을 듣고 어리둥절했던 경험을 나눴다.

 이 기자는 기자 초년병 시절 선배로부터 귄 있다는 말을 들어도 그게 칭찬인지 몰라 고개를 푹 숙였던 기억이 있다지역민들의 애향심에 감동해 그들의 고향 사랑에 살포시 껴보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백희준 부편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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