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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검부터 재난까지 단어의 무게 실감한 기회”

작성자 : 광주전남기자협회 (112.187.52.***)

조회 : 161 / 등록일 : 23-10-04 16:28

부검부터 재난까지 단어의 무게 실감한 기회

 

기협·한국언론진흥재단 주관

 

호남권 주니어 기자 한자리

DNA 분석·사회적 재난 등

사건·사고현장 전문성 강화

지역 현안 공유하며 화합도

 e48972418d578f616980443e24eeea90_1696404 이름 뒤에는 기자가 붙었지만 아직은 그 타이틀이 어색하기만 한 주니어 사건기자들이 한데 모였다.

 지난 21일 광주전남기자협회와 한국언론진흥재단이 공동으로 주관하는 주니어 기자 취재 역량 강화 전문연수가 열렸다. 이날 오후 1시가 가까워지자 광주시 동구 충장로에 있는 벤틀리 호텔에는 앳된 얼굴의 기자들이 하나둘 도착했다.

 목요일 오후 시간대, 한 주를 마무리하며 마감에 열을 올리고 있을 시간에 호텔에 와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듯한 눈빛이었다. 이들에게 혹시 기자세요?” 아무도 묻지 않았지만 야무지게 백팩을 매고 비장한 눈빛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은 누가 봐도 기자같았다. 기자냐고 묻는 대신, 모두에게 공통된 질문이 들어갔다. “혹시 어디서 오셨어요?”

 광주·전남과 전북, 제주 주니어 기자들이 광주를 찾았다. 이들의 접점이라곤 사건 주니어라는 것. 본인을 소개하며 명함을 건네길 수십번, “명함이 다 떨어질 것 같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올 때쯤, 기자단은 전남 장성군 남면에 있는 광주과학수사연구소로 이동했다. 취재 역량 강화 전문연수의 목적은 우리가 자칫 무감각하게 생각할 수 있는 단어와 소재들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드는 데 있다.

 기자들은 종종 사건·사고 기사를 작성하며 부검을 의뢰했다는 문장을 덤덤히 써 내려가곤 한다. 부검은 사건·사고 기사에서 빠질 수 없는 문장이지만, 어쩌면 기사의 말미를 장식하는 한 문장에 그치기도 한다.

 광주과학수사연구소에서의 일정은 조남수 유전자분석과장의 법과학 DNA 분석과 적용에 대한 강연으로 시작됐다. 이어지는 설일웅 약독물실장의 과학수사 약물과 독극물, 마약 등 감정 프로세스강연은 최근 범죄로 쉽게 접할 수 있는 약물부터 마약까지 구체적으로 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됐다.

 부검실은 가까이서 살펴볼 수는 없었지만 유리창 너머로 볼 수 있었다. 부검은 보통 1시간 내로 이뤄지며 1차적으로 외인적인 부분을 살피고 2차적으로는 내부적인 부분을 살핀다고 한다.

 1900여 건의 부검을 실시한다는 사실에 새삼 죽음에 물음표를 두는 사건·사고가, 기자들이 미처 파악하지 못한 일들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간 우리가 작성해 온 기사 속 자세한 사망원인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부검을 진행해 확인한다는 문장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았다.

 저녁을 먹기 전 호텔 세미나실에서는 생명존중 저널리즘과 자살보도 특강이 기자들을 기다리고 있다. 자살보도 및 취재 때 주의해 사용해야 할 단어와 자살보도 권고준칙을 이해하고 적용하는 방법 등에 대한 강연이었다. 강사로 나선 김도연 광주자살예방센터 팀장은 자살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기사를 통해 접하는 자살이라는 단어 하나가 자극적이고 충동적으로 다가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주니어 기자들은 자살 기사는 아예 쓰면 안 되는 것인지’,‘자살이라는 단어를 대체할 수 있는 단어는 무엇인지등에 대한 의문을 던지며 열띤 논의를 펼쳤다.

 최근 자살 위기극복 특별위원회극단적 선택이라는 단어까지 자제해달라는 권고가 나오면서 고민이 깊어진 찰나였다.

 이날 강연으로 자살보도에 대한 명쾌한 답은 내려지지 않았지만 자살보도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하게 된 시간이었다.

 저녁 식사시간이 되자 긴 여정에 굶주린 기자들은 눈앞의 불낙에 잠시 이성을 놓았다. 배가 어느 정도 채워졌을까, 기분이 좋아진 기자들은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이날 광주과학수사연구소의 경험도, 강연도 좋았지만 사실 우리는 함께 이동하는 내내 서로가 궁금했다. 각자 지역별로 무리 지어 다닌 탓에 낮 시간대 친해지긴 힘들었다.

 얼큰하게 술이 오른 기자들은 능숙하게 혹은 어색하게 술잔을 들고 자리를 옮겨 다녔다. 친해지기 위해서라면 가벼운 엉덩이는 필수였다. 이른 저녁 시작된 술자리는 새벽까지 이어졌다. 광주·전남, 전북 그리고 하늘을 가로질러 먼 길 찾아와 준 제주 기자들 모두 알고 있었다. 우리가 이렇게 한자리에 모일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다는 것을.

 지역기자들이 모인만큼 우리는 지역을 공유했다. 물꼬는 사투리로 텄다. 맛집부터 관광지까지 소재는 끊이질 않았다. 누가 기자 아니랄까봐, 답변을 듣기도 전에 또 다른 질문이 이어졌다.

 전북 기자단에 잼버리를 물었다가 혼쭐이 났다. 잼버리는 금기어와 같았다. 제주 기자단에는 제주도 여행에 대한 질문을 하며 물가가 너무 올랐다고 투정했다.

 하루가 지난 다음 날인 주니어 기자들은 첫 만남의 어색함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이날은 오전부터 재난안전 분야의 대가 송창영 광주대 건축학부 교수의 언론인을 위한 재난안전 국가방재 이해강연이 예정돼 있었다. 사회적 재난으로 소중한 존재를 잃은 이들의 이야기를 영상과 사진 등을 접했다. 광주에서도 학동참사, 화정동 아이파크 붕괴사고가 발생했기에 타 지역만의 일은 아니었다. 숙연해진 분위기 속 가슴 아픈 사연에 눈물을 훔치는 기자들도 있었다.

  어느덧 주니어기자라는 이름으로 함께한 12일간의 일정이 끝이 나고 각자의 지역으로 돌아갈 시간이 돌아왔다. 지역의 거리감에 쉽게 볼 수 없겠지만 시간이 흘러 다시 보게 됐을 때는 주니어꼬리표가 없어졌을까? 주니어가 아닌 시니어가 된대도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사건은 어렵고, 부검은 낯설고 자살기사는 어렵고 사회적 재난에 눈물 훔치는 기자일 것만 같다. 김다인 광주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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