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80년 5월 신군부의 부당한 언론검열에 과감히 맞서 제작거부를 결의했던 선배 언론인들의 의지는 한국 언론사에 큰 의미를 지닌다. 하지만 그들의 역할이 있다고 해서 5ㆍ18민주화운동의 상처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대다수 언론매체와 기자들이 5ㆍ18에 대한 침묵과 왜곡, 권력에 대한 찬양으로 일관해온 사실은 한국 언론의 부끄러운 역사이기도 하다. 따라서 현장을 뛰는 기자로서 언론의 자기반성적 접근이 앞서야 한다는 점을 제기한다. 5ㆍ18과 언론의 역할을 조명하는 좌표를 크게 두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첫째는 5ㆍ18민주화운동의 진실을 알리고 정신을 계승하는 데 언론이 어떤 역할을 해왔고 미래 어떻게 할 것인가이며, 또 하나는 5ㆍ18의 중요한 정신, 민주ㆍ인권의 척도가 될 언론의 자유가 지금 어디에 있느냐는 점이다. 첫번째 화두의 물음에 대한 답은 분명하다. 그 당시 언론들은 5월 광주의 진실 보도를 하지 못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왜곡 보도에 앞장섰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역사다. 5ㆍ18 정신계승과 관련해 민주ㆍ인권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언론의 자유는 국제 언론감시단체인 '프리덤하우스'가 발표한 2013 언론자유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여전히 부분적 언론자유국이란 오명을 벗지 못하고 있다.
광주전남기자협회 13-05-24 조회4457
<사진설명 (상) 노정훈, 이승우 커플 (하) 오경은, 최필공 커플> 기자들 '5월 봄바람' 났네노정훈·오경은·양창희 잇단 결혼 소식 계절의 여왕 5월, 광주·전남 신문·방송사 기자들이 잇달아 ‘품절남’, ‘품절녀’가 됐다. 남도일보 노정훈(43) 기자는 지난 5월2일 ‘서울 아가씨’ 이승우(40) 광주관광컨벤션뷰로 마케팅 팀장과 백년가약을 맺었다. 2년이 넘는 연애 끝에 손을 맞잡고 결혼식장에 들어선 둘은 지난 2012년 9월 타이완 타이난에서 처음 만났다. 중화권 마케팅 담당자였던 아내 이승우 팀장이 당시 광주관광컨벤션뷰로에서 기자들을 대상으로 기획한 팸투어를 인솔했었다. 인연은 이후 광주에서 이어진 뒤풀이 모임에서 시작됐다. 함께 타이완을 다녀왔던 지인들이 “노총각, 노처녀 둘이서 잘 해보면 어떻겠느냐”며 자연스럽게 분위기를 만들어주면서 부터다. 그리고 그해 겨울이 시작될 무렵 “한번 만나보자”라는 노총각의 재미없는 고백에 “그래 만나보자”라는 어색한 답변이 돌아왔고, 비밀 연애가 시작됐다. 노정훈 기자는 “친절하고, 상냥하고, 남을 배려하는 아내의 모습에 반했다”며 “늦게 장가를 가니깐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도 조심스러웠는데 도와준 지인들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광주매일신문 오경은(32) 기자도 ‘5월의 신부’가 된다. 오 기자는 오는 5월30일 낮 12시40분 동갑내기인 최필공(32) 삼우중공업 연구원과 결혼식을 올린다. 둘은 지난해 4월26일 친구 결혼식에서 처음 만났다. 오 기자는 이날 결혼식에서 부케를 받았고, 예비신랑 최 연구원은 사회를 봤었다. 목포에서 소개팅을 통해 두 번째 만남을 가진 오 기자는 첫날 최 연구원의 저돌적이면서도 스마트한 모습에 반했다. 이날 저녁을 먹고 광주로 올라온 오 기자에게 “맥주 한잔 하고 싶어서 광주 가는 중”이라는 전화가 걸려온 것. 이후 둘은 순천과 광주를 서로 오가며 1년간의 데이트 끝에 결혼에 골인했다. 오경은 기자는 “아직 별로 실감은 안 난다”며 “평생 단짝을 만난 기분이고, 앞으로 친구처럼 재미있게 잘 살겠다”고 말했다. KBS광주방송총국 양창희 기자도 웨딩마치를 올린다. 신부는 안제경시로, 대구 여인이다. 이들 연인은 취업 준비중 독서모임에서 만났다. 양 기자는 "내 짝은 광주에 연고가 없다"며 "그런만큼 몸 바쳐 행복하게 해주겠다"고 마ㄹ했다. -김경인 편집위원(광주일보)
광주전남기자협회 15-05-15 조회4459
지난 1991년 9월 김중배 동아일보 편집국장이 사주의 편집국 개입에 맞서다 해임됐다. 이는 시장권력과 자본권력이 언론을 잠식한 대표적인 사건이었다. 결국 이후 '기자의 사원화'로 생계형 언론이 출현하게 되면서 한국 언론의 위기를 초래했다. 생계형 언론의 문제점은 '공론의 장'으로서의 사명보다는 자사 이익의 확대 재생산과 언론 권력을 추구하는데 있다. 이에 대한 보도행태는 왜곡된 의제 설정, 정파적 보도, 특정 이익을 위한 물타기 보도, 훈계성 보도 등으로 나타난다. 생계형 언론과 관련된 이슈는 최근 '성추행 의혹'으로 해임된 윤창중 대변인의 사례에서 찾아 볼 수 있다. 그는 기사를 통해 생계형 권력주의를 추구했다. 또 공정보도에 기여한 언론인으로 평가받는 손석희의 종합편성채널 JTBC행은 찬반 논란을 부추겼다. 생계형 언론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예는 기자가 주주로 참여해 협동조합으로 전환한 프레시안을 꼽을 수 있다. 이는 언론의 사명과 정체성 강화에 생존길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광주전남기자협회 13-05-24 조회4484
승진을 축하합니다 ■광주매일신문 ▲경영사업국장·이사 박준수 ▲부국장대우 사회부장 박연오 ▲부국장대우 사진부장 김영근 ▲지역사회부 부국장대우 고병곤 ▲지역사회부 부국장대우 김진선 ▲지역사회부 부장 윤보현 ▲사회부 부장대우 박은성 ▲편집부 부장대우 김태진 ▲정치부 차장 노병하 ▲사회부 차장대우 임채만 ▲지역사회부 차장대우 신재현
광주전남기자협회 14-10-17 조회4494
1980년 민주화운동 당시 신군부의 광주 폭거에 항의한 언론투쟁을 '광주의 역사'에 포함시켜야 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한국기자협회가 주최하고 광주ㆍ전남기자협회 주관으로 20일 광주 YMCA 무진관에서 열린 5ㆍ18 민주화운동 33주년 기자의 날 기념 토론회에서 고승우 80년해직언론인협의회 공동대표는 '5ㆍ18 민주화운동 33주년과 한국언론의 좌표'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80년대 민족민주운동 발전의 출발점은 5ㆍ18민주화운동에서 비롯됐고 그 추동력은 지금도 여전히 뜨겁고 강력하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고 대표는 이어 "30년이 지난 지금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에 평화와 안전이 정착되기 위해서는 광주정신이 원동력이 돼야 하고 그 정신의 확산에 언론이 적극 기여하도록 다각적인 노력이 전개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한국언론 어디로 가고 있나'라는 주제로 진행되는 이날 토론회는 고 대표의 주제발표에 이어 윤장현 아시아인권위원회 이사의 사회로 전ㆍ현직기자, 교수 등 4명이 토론자로 나서 열띤 토론을 가졌다. 토론자로는 손정연 전 전남일보 편집국장, 조정관 전남대 정외과 교수, 구길용 광주ㆍ전남기자협회 수석부회장, 김덕모 호남대 신방과 교수가 참여했다. 조정관 전남대 교수는 "5ㆍ18의 범위는 80년 5월18~27일 광주에 국한돼서는 안된다"며 "5ㆍ18을 바르게 보도하고자 전국적으로 싸우고 희생된 언론의 노력은 목포 및 다른 전남지역에서의 투쟁과 더불어 5ㆍ18을 구성하는 한 부분으로 포함되는 것이 정당하다”고 강조했다. 정영팔 광주ㆍ전남기자협회장은 "민주ㆍ인권ㆍ평화를 지향하는 오월정신이 우리 언론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언론자유를 위해 온 몸으로 저항했던 선배 언론인들의 정신을 이어받기 위해 이번 토론회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한편 광주시와 5ㆍ18기념재단이 후원한 이날 토론회는 강운태 광주시장과 오재일 5ㆍ18기념재단 이사장, 전ㆍ현직 언론인 등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서울지역에서 온 해직기자 30여명은 담양지역에서 1박을 한 후 21일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ㆍ18민주묘지를 참배하고 상경할 예정이다.
광주전남기자협회 13-05-24 조회4513
광주ㆍ전남기자협회(회장 정영팔)는 지난 9일 "5월 영령의 넋이 함께 할 5ㆍ18 33주년 기념식에 '임을 위한 행진곡'이 당당하게 울려 퍼지도록 공식 식순에 포함시키고 이번 기회에 5ㆍ18 기념곡으로 지정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광주ㆍ전남기자협회는 이날 성명을 내고 "전두한 신군부의 서슬 퍼런 탄압 아래 만들어진 '임을 위한 행진곡'이 또다시 보수정권의 논리에 밀려 '퇴출' 위기를 맞고 있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이어 "국가보훈처가 5ㆍ18 공식 추모곡을 별도로 제정하려는 시도를 중단하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광주시민, 대한민국 국민에게 즉각 돌려줄 것을 요구한다"면서 "선배 언론인의 뜻을 이어받아 5ㆍ18의 숭고한 정신이 역사 속에 올곧이 자리매김 되도록 '임을 위한 행진곡'을 지켜낼 것을 천명한다"고 밝혔다. 광주ㆍ전남기자협회는 "5월의 아리랑, '임을 위한 행진곡'은 민주화의 도도한 흐름 속에 민중과 함께해 온 역사의 산증인이다"면서 "80년 광주항쟁 당시 시민군 대변인으로 마지막까지 전남도청을 지키다 산화한 고 윤상원 열사와 노동현장에서 생을 마감한 고 박기순 열사의 '영혼결혼식'이 영감을 불어넣었고 지금은 민중가요를 넘어 5월의 노래, 국민가요로 애창되고 있다"고 말했다. "5월 광주는 물론 대한민국 민주화의 여정 속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이 차지하는 의미는 각별하다.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는 호소는 이제 민주주의의 소중한 역사가 됐다"면서 "멀리 동남아에서까지 민중의 노래로 애창되고 있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 정작 대한민국에서 도외시되고 있는 현실에 참담함이 앞선다"고 밝혔다. 광주ㆍ전남기자협회는 "30여년 5ㆍ18민주화운동 기념식때면 어김없이 불려온 노래가 보수정권 들어 퇴출 위기를 맞고 있다"면서 "이명박 정부의 왜곡된 역사관이 박근혜 정부에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본다. 이는 '역사 지우기'이자, '5월 광주'를 폄훼하려는 불순한 의도임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임을 위한 행진곡 5ㆍ18 기념곡 지정 촉구 성명 광주ㆍ전남기자협회 전두한 신군부의 서슬 퍼런 탄압 아래 만들어진 '임을 위한 행진곡'이 또다시 보수정권의 논리에 밀려 '퇴출' 위기를 맞고 있다. 5월의 아리랑, '임을 위한 행진곡'은 민주화의 도도한 흐름 속에 민중과 함께 해온 역사의 산증인이다. 80년 광주항쟁 당시 시민군 대변인으로 마지막까지 전남도청을 지키다 산화한 고 윤상원 열사와 노동현장에서 생을 마감한 고 박기순 열사의 '영혼결혼식'이 영감을 불어넣었고 지금은 민중가요를 넘어 5월의 노래, 국민가요로 애창되고 있다. 5월 광주는 물론 대한민국 민주화의 여정 속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이 차지하는 의미는 각별하다.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는 호소는 이제 민주주의의 소중한 역사가 됐다. 멀리 동남아에서까지 민중의 노래로 애창되고 있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 정작 대한민국에서 도외시되고 있는 현실에 참담함이 앞선다. 30여년 5ㆍ18민주화운동 기념식때면 어김없이 불려온 노래가 보수정권 들어 퇴출 위기를 맞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왜곡된 역사관이 박근혜 정부에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본다. 이는 '역사 지우기'이자, '5월 광주'를 폄훼하려는 불순한 의도임이 분명하다. 이에 광주ㆍ전남기자협회(회장 정영팔)는 국가보훈처가 5ㆍ18 공식 추모곡을 별도로 제정하려는 시도를 중단하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광주시민, 대한민국 국민에게 즉각 돌려줄 것을 요구한다. 또한 5월 영령의 넋이 함께 할 5ㆍ18 33주년 기념식에 '임을 위한 행진곡'이 당당하게 울려 퍼지도록 공식 식순에 포함시키고, 나아가 이번 기회에 '임을 위한 행진곡'을 5ㆍ18 공식 기념곡으로 지정할 것을 촉구한다. 광주ㆍ전남기자협회는 선배 언론인의 뜻을 이어받아 5ㆍ18의 숭고한 정신이 역사 속에 올곧이 자리매김 되도록 '임을 위한 행진곡'을 지켜낼 것을 천명한다. 2013년 5월 9일 광주ㆍ전남 기자협회
광주전남기자협회 13-05-24 조회4592
5ㆍ18민주화 운동 33주년을 맞아 한국사회를 되돌아 볼 때 80년대 민족민주운동의 출발점은 5ㆍ18민주화운동에서 비롯됐고 이 운동의 추진력은 유신체제를 승계하려는 신군부의 독재 체제를 무너뜨리는 성과도 이뤄냈다. 실제 5ㆍ18민주화운동은 1987년 6월 항쟁을 일으킨 실질적인 동력으로 작용해 민주화를 쟁취했고, 1992년 문민의 정부에 이어 1997년 국민의 정부로 민주적인 투표에 의한 평화적 정권 교체까지 이뤄냈다. 이로써 광주정신 계승을 자임한 진보세력의 집권은 민주ㆍ인권ㆍ평화가 사회적 의제가 된 계기를 마련했다. 광주정신의 기본모토가 된 민주ㆍ인권ㆍ평화는 부당한 공권력에는 저항권이 있다는 민주주의 기본 원리를 깨닫게 했고 멀게 만 느껴졌던 민주주의의 발전을 앞당기게 했다. 광주 정신인 민주ㆍ인권ㆍ평화가 언론에 의해 얼마나 구현됐는가를 살피기 위해 개념 정립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민주는 '부당한 권력에서 저항권이 있다는 것과 남이 지켜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지키고 창조한다'는 기술에서 그 뜻이 확인된다. 즉 민주는 올바른 권력의 창출과 시민 권익의 실천이 자주적 과정을 통해 극대화되는 민주주의의 창조와 유지 속에 발현될 수 있다는 것으로 정의된다. 인권은 '5ㆍ18민주화운동은 부당한 국가권력에 대한 시민저항으로 출발해 자치공동체의 형성 및 정의를 위한 자기희생과 반인륜적 학살에 저항하는 세계적 인권운동에서 발전하게 됐다'는 기술에서 그 의미가 확인된다. 평화는 '한국의 풀뿌리들은 1980년 광주를 통해 어느 한 계층에서만 외쳐왔던 민주ㆍ자주ㆍ인권ㆍ통일이라는 기치를 그들 가슴 내부에 자연스레 구호로 형성시켰다'는 표현에서 볼 수 있다. 정부 수립이후 광주 정신인 민주ㆍ인권ㆍ평화가 한국 언론에 의해 얼마나 보도되고 추구됐는지를 모색할 때 그 걸림돌에 부각되는 가장 큰 요인의 하나가 국가보안법이다. 국보법이 지배해온 지난 60여년 동안 양심과 자유, 민주주의가 처참하게 유린돼 왔기 때문이다. 보수정권은 국가보안법을 통해 진보언론의 활동 제약을 꾸준히 전개해 왔고, 이에 진보 언론은 자생하기 위한 몸부림을 치고 있다. 결국 지난 80년 보여준 민주, 인권, 평화의 광주정신은 국보법에 의해 훼손당하면서 언론 자유를 유린하는 이 법의 개폐가 시급한 실정이다. 여기에다 1960대 초 등장한 군부독재는 언론을 철저히 권력의 홍보기구로 전략시켰다. 박정희 장기 독재 집권은 광주민주화운동을 거치면서 전두환 철권통치 시대로 접어들지만 '광주'에서 촉발된 대학가와 시민사회의 민주화 요구와 항거로 1987년 6월 항쟁이 발생했다. 전두환 독재 시절에는 동아, 조선 투위와 80년 해직 언론인들이 저항매체인 '말'지 제작과 배포를 통해 제도언론이 보도하지 못한 진실 보도 역할을 담당했다. 또 노태우 시절 신문발행이 급증하게 되면서 한겨레신문이 국민주주 신문으로 등장해 언론계에 신선한 충격을 줬으며, 1997년 국민의 정부가 탄생하면서 민주화가 제도적으로 추진됐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족벌신문은 민중의 희생으로 확보된 민주화 공간 속에서 삐뚤어진 모습의 '언론자유'를 주장하며 저항했고 그런 모습은 참여정부 시절에도 지속됐다. 참여정부는 집권 초 6ㆍ15공동선언으로 조성된 남북 화해 기류를 이어가지 못했고 노무현 정권 말기인 2007년에 남북이 10ㆍ4선언에 합의했지만 그것이 실천되지 못한 채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다. 이 정권은 과거 정부의 남북 합의를 철저히 외면하면서 미국과 함께 대북 군사적 압박을 강행했고 결국 금강산 관광이 중단된데 이어 박근혜 정권 들어 개성공단도 실질적으로 폐쇄되기에 이른다. 사상의 자유를 탄압하면서 언론 자유를 유린하는 국가보안법의 개폐는 시급히 이뤄져야 하고 언론 산업이 전체 사회가 균형 발전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에 평화와 안전이 정착되기 위해서는 광주정신이 그 원동력이 돼야 하고 그 정신의 확산에 언론이 적극 기여하도록 다각적인 노력이 전개돼야 한다. 광주항쟁 기간 동안 신군부의 광주 폭거에 항의해 벌인 언론 투쟁이 아직까지 '광주'의 일부로 포함되지 못하고 있는 현상은 역사 바로 잡기 차원에서 개선돼야 한다.
광주전남기자협회 13-05-24 조회4622
"정말 오랜만에 친구를 만났다는 반가움? 하지만 세월이 쌓은 '애증'도 만만치 않았죠."11년 만에 친정으로 돌아온 광주일보 박성천(44) 기자는 짧은 소회를 먼저 던졌다. 지난 2002년 월간지 '예향'이 휴간되면서 회사를 떠났던 그는 올해 4월호로 복간되는 '예향'을 발판삼아 지난 1월 광주일보의 문을 다시 두드렸다. 낯익은 선배와 낯선 후배 사이에서 항상 웃었지만, '애증'이라는 단어로 표현할 만큼 지난 세월의 '외출'이 야속했다고 했다.지난 1994년 광주일보 편집부로 입사했던 그는 줄곧 '글쓰기'에 관심을 보였다. 광주일보 현직 기자로 지난 2000년 전남일보 신춘문예에서 단편소설 '무지리의 새'로 당선, 등단했다. 타사 신춘문예로 글쓰기의 소질을 보인 그는 편집부에서 '월간 예향부'로 옮겼고, 펜을 잡았다. 전남대 영문과 재학시절 용봉문학상과, 오월문학상을 수상하며 인정받은 필력은 예향에서 꽃을 피웠다. 그것도 잠시, 예향이 숨 고르기에 들어가자 설 자리는 사라졌다."30대 중반에 회사를 그만두니 막막했죠. 내 미래와 진로가 불안했고…. 가장 자신있는 것을 선택해야 했고, 글쓰기는 밥벌이로 이어졌죠."그는 광주대 문예창작과에서 문순태 교수의 지도로 소설에 대한 열정을 이어가며 석사를 취득했다. 단순한 글쓰기보다 학문으로서 글에 대한 탐구가 이어졌고, 전남대 국문과에서 2008년 '문순태 소설의 서사구조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생계가 중요한 상황에서 학위가 필요했다"고 설명한 그는 지난 2011년 첫 소설집 '메스를 드는 시간'과 기행집 '강 같은 세상은 온다'를 펴냈다. 전남대와 목포대에서 강사로 활동하며 지난해에는 '문순태 문학 연구-해한의 세계'라는 연구서를 출간, 학자로서의 면모를 드러내기도 했다.지난해 12월 예향 복간을 앞두고 컴백 제의를 받게 된 그는 주저했다."광주일보 기자였다는 자부심, 그리움이 많았지만 그동안 바뀌어버린 언론환경이 좋지 않았고, 다시 입사한다는 것은 모험이라는 생각이 컸어요."그는 예전부터 광주가 문화수도를 자처한 만큼, 예향은 분명 복간할 것이고, 자신이 할 일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고 했다. 다만 11년을 쌓아온 학자의 길을 되돌리긴 어려웠다고. 주저함 끝에 강의와 기자를 병행한다는 조건으로 돌아왔다."오전엔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의 시선으로, 업무는 기자의 시선으로, 글은 작가의 시선으로, 스스로가 역동적이고 재미있다고 느낍니다. 조화를 이룬다면 글쓰기에도 보탬이 되겠죠."문화생활부의 문학담당 기자 겸 예향 기자로 일하게 된 그는 문학전문기자를 꿈꾼다고 했다. 전문가로서 독자들이 '박성천'이라는 이름만 봐도 '아! 글 잘 쓰는 그 기자'라고 부를 정도가 돼야한다는 것. 11년의 공백을 두고 돌아온 그는 과거와 비교해 후배 기자들에게 바람도 남겼다.후배들이 성실해진 반면 정적으로 변해 안타깝다고, 과거의 기자들은 야성과 모험을 즐겼지만 후배기자들의 엉덩이가 무거워 보인다고 했다. 더불어 보다 마음가짐을 단단히 하라는 주문도 전했다."자부심으로 똘똘 뭉쳤던 기자생활을 관둔 뒤 11년은 가혹했어요. 직장의 소중함을 느끼며 성찰의 시간이었거든요. 그런데 꿈을 가지고, 포기하지 않으면서 하고 싶던 일을 하게 됐습니다. 언론 환경이 나빠진 건 사실이지만 우리 후배들이 너무 좌절하기 보다는 이겨내고 도전했으면 좋겠습니다.""내 인생이 어떻게 펼쳐질까. 40대 중반에 접어들었지만 지금도 나를 사로잡는 궁금증이에요. 강사로서 자유롭고, 나만의 세계가 있다는 충만감이 있지만 소속감이 없는 이 직업이 두렵기도 했어요." 임동률 편집위원
광주전남기자협회 13-03-19 조회4712
5ㆍ18광주민주화운동의 민주ㆍ인권ㆍ평화 정신 계승에 기여한 언론인을 발굴하기 위한 '5ㆍ18언론상'이 3년 만에 부활됐다. 지난 2일 광주ㆍ전남기자협회(회장 정영팔)와 5ㆍ18기념재단(이사장 오재일)은 신군부의 언론통제 상황에서도 5ㆍ18민주화운동의 진실을 보도하기 위해 헌신한 언론인들을 기념하고 5ㆍ18정신 계승에 노력하는 언론인을 발굴하기 위해 '5ㆍ18언론상'을 수여한다고 밝혔다. 시상분야는 취재보도와 논평ㆍ비평으로, 후보자격은 5ㆍ18의 민주ㆍ인권ㆍ평화정신을 계승하고 알리기 위해 4~5월 기간 중 보도된 방송, 신문 기사의 관련 기자 또는 팀이다. 후보자 접수는 오는 6월10일까지 받고 수상자 발표는 20일, 수상식은 28일 실시된다. '5ㆍ18언론상'은 지난 2007년 제정된 '5ㆍ18언론상'은 지난 2010년 이후 중단됐다가 3년 만에 부활됐다. 특히 올해부터는 광주ㆍ전남지역 언론사에 국한됐던 시상 범위를 전국 모든 언론사로까지 확대했다. 이는 5ㆍ18민주화운동이 전국화되고 세계화되는 추세를 반영한 것이다. 2007년 무등일보는 '5ㆍ18당시 집단매장 추정유골 무연고처리 의혹' 기사를 통해 5.18광주민주화운동의 진실을 알리는데 앞장선 점을 높이 평가받아 첫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이후 2010년 광주일보가 5ㆍ18 특별기획 시리즈 '5월을 넘어 광주를 넘어'가 수상하기도 했다. 정영팔 광주ㆍ전남기자협회장은 "광주항쟁의 빛나는 역사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자랑스럽게 등재됐음에도 30여 년 동안 5ㆍ18민주화운동 기념식 때면 어김없이 불려온 노래가 보수정권이 들어서면서 퇴출 위기에 놓이는 등 '5월 광주'를 폄훼하려는 구시대적 망령이 맴돌고 있는 상황이다"면서 "2007년 5ㆍ18광주민주화운동의 진실 규명과 광주시민의 민주정신을 올바로 알리기 위한 언론상이 첫 제정될 당시의 의미를 되새기고 민주ㆍ인권ㆍ평화 정신 계승 기여한 언론인 발굴위해 3년 만에 다시 부활하게 됐다"고 말했다. 지역ㆍ세계 아우르는 문예잡지 꿈꿔 박진현ㆍ윤영기ㆍ박성천ㆍ이보람ㆍ최현배 '최강 멤버' 광주일보 예향팀 지난해 늦가을쯤이었다. 낯설지만 익숙한 단어가 편집국을 웅성거리게 한 것은…. "예향을 복간할 계획입니다." 선배들은 놀랐고, 후배들은 어리둥절해 했다. 선배들에겐 잊고 있던 이름이 11년 만에 튀어나온 셈이고, 어린 기자들에겐 '미지와의 조우'로 다가섰다. 광주를 대표하던 문화예술잡지가 다시 세상에 나온다니. 업무 분담과 취재 여건에 관한 수많은 얘기가 편집국을 뒤덮었지만 복간계획은 빠르게 흘러갔다. 의견을 수렴해 예향 담당 부서인 문화2부가 탄생했다. 올 1월 정기인사에서 11년만의 예향팀이 꾸려졌다. 편집부국장인 박진현 국장이 문화2부장을 맡았다. 종종 문화선임기자로 해박한 문화지식이 담긴, 날카로운 문화칼럼을 썼던 장본인이다. 부드러운 말투로 후배들을 다독거리던 박 선배는 막중한 책임감을 얻었다. 윤영기 차장은 예향팀의 수석 역할이다. 후배들에게 '성' 한번 안내면서도 어느새 정곡을 콕 찔러내는 단어로 기사방향을 잡아주던 윤 선배는 사내에서도 손꼽히는 '연문의 달인'. 예향에 어울리는 인재라는 후배들의 성원을 얻으며 문화행정의 전문가가 되기로 했다. 박성천 차장은 작가이자 박사이자 강사이자 기자다. 여러 전문직 명함을 가진 박 선배는 오로지 예향을 위해 10여년 만에 광주일보에 다시 입사했다. '작가급' 미사여구로 장식한 수준 높은 글들은 예향에서 만나는 인터뷰 기사에 안성맞춤. 편집부에 있던 이보람 기자는 불혹의 나이를 얼마 남기지 않았음에도 구성원의 막내를 차지했다. 다양한 문화 전반의 취재에 있어 쉽고 편한 문체로 독자에게 다가서는 것이 장점. '광주일보 체육인' 사진부 최현배 차장은 신문과 잡지의 취재 현장을 동시에 뛰게 됐다. 지난 2002년 2월, 통권 209호로 세상에서 잠시 멀어졌던 월간 예향은 1984년 10월 창간호를 내며 17년간 이어졌던 지방에서 발행된 전국 유일의 문화예술교양잡지였다. 그 예향이 지난 4월 210호로 11년 만에 빛을 다시 봤다. 210호를 내기 위한 지난 6개월은 원석을 다시 주워 추억을 입히되, 새 칠을 하는 시간이었다. 복간호의 표지를 고르자며 편집국에선 시안을 걸고 찬반투표를 했고, 커버스토리의 가닥을 잡기 위해 담당기자는 여러 번 해외를 오갔다. 예향팀을 벗어나 '신문업'에만 종사하던 기자들도 잡지의 매력에 빠졌다. 장문과 호흡이 긴 인터뷰, 매일 마감의 속전속결에서 한 템포 여유있는 문장으로 예향을 채웠다. 전 세계에 광주ㆍ전남의 향기가 담긴 책을 뿌리자는 원대한 계획 아래, 지난 3월 말 복간호가 등장하자 호평과 혹평, 격려와 채찍이 동시에 쏟아졌다. 강산이 변하는 시간을 넘어 독자를 만난 예향이 어찌 첫술에 배부르랴. 조금 더 차분해진 모습으로 나온 5월호는 보다 큰 호응으로 '출입처'를 넓혔다. 다른 회사의 친한 선배는 "두 달을 지켜봤는데 솔직히 놀랠 만큼 잘 만들었더라"며 격려해 줘 잠시 어깨를 으쓱할 수 있었다. 이제 매달 독자와 만날 예향은 '문화의 시대에 지역과 세계를 아우르는 문예잡지'를 꿈꾸고 있다.
광주전남기자협회 13-05-24 조회4721
무등일보가 오는 2월14일 광주 서구 치평동 상무지구 스카이랜드 빌딩으로 사옥을 이전한다. 사옥 이전과 더불어 무등일보 이미지 제고와 편집국 근무환경 개선도 이루어질 예정이다. 무등일보는 지난 2003년 11월 치평동 BYC 빌딩으로 사옥을 이전한 뒤 10년만에 상무지구 관문인 스카이랜드 빌딩에 새롭게 둥지를 트는 것으로 직원들의 사기가 한껏 고무되고 있다. 무등일보는 1988년 광주 북구 신안동 옛 광호예식장에서 창간된 뒤, 북구 누문동 밀알회관 뒷편, 중흥동 현 한국시멘트 자리, 남구 사직동 라인빌딩 등으로 사옥을 이전했으며 1999년 8월 1일 휴간했다. 이후 4개월 만인 1999년 11월 1일 동구 호남동 부민빌딩에서 복간한 뒤 2003년 11월 현재의 BYC 빌딩으로 이전했었다. 김명술 무등일보 사장은 "'정다운 친구 시민언론' 무등일보가 최근 문화체육관광부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역신문발전기금 우선지원대상사로 선정된데 이어 새 건물로 사옥을 이전하게 됨에 따라 무등일보의 이미지 제고와 구성원들의 근무환경 개선에 박차를 가할 것"이라며 "아울러 새로운 언론 환경의 변화에 대응해 사업의 다각화와 경영의 합리화를 도모하고 효율적인 조직 개편과 과감한 인사 교류를 실행하겠다"고 밝혔다.김현주 편집위원
광주전남기자협회 14-03-14 조회4993
무등일보지회는 지난달 30일 서울 강남세브란스병원을 방문, 암 투병중인 무등일보 윤한식 부장에게 성금을 전달했다. 서울지사 소속으로 국회출입 기자인 윤 부장은 지난 3월 간암진단을 받았으며 현재 수술을 앞두고 휴직한 상태다. 무등일보지회는 윤 부장의 투병 소식이 전해진 직후 긴급 회의를 갖고 윤 부장을 돕기 위한 성금모금 활동에 나설 것을 결의했다. 지난 4월 한달여 동안 진행된 자체 모금활동에는 본사 편집국과 전산실, 뉴미디어국, 무등일보지역기자협의회 등이 폭넓게 참여했다. 그 결과 모아진 금액은 530여만원에 달했다. 무등일보지회의 모금 사실이 알려지면서 광주ㆍ전남기자협회 소속 회원사들과 유관 단체들의 참여도 잇따랐다. 전ㆍ현직 편집국장들의 모임인 광주ㆍ전남언론포럼에서 100만원, 광주ㆍ전남에서 활동중인 중앙기자단에서 50만원을 기탁했다. 협회 소속 신문사인 전남일보와 광남일보가 30만원씩을, 그리고 광주매일이 20만원을 쾌척했다. 통신사인 연합뉴스와 뉴시스는 각각 50만원, 광주MBC 30만원, CBS는 20만원을 무등일보지회에 전달했다. 동아일보 이형주 기자, 뉴시스 구용희 기자, 광주시의회 조오섭 의원이 개인적으로 각각 10만원씩을 보탰다. 서구청과 남구청에서도 각각 10만원씩을 기탁했다. 이렇게 4월 한달 동안 모아진 총액은 960만원이었으며 이 성금은 지난달 30일 윤 부장에게 전달됐다. 윤한식 부장은 이날 성금을 전달받은 자리에서 "간암 세포의 크기를 줄이기 위한 색전술 시술을 했는데 다행히 예후가 좋다는 얘기를 의사로부터 들었다"며 "조만간 수술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근황을 전했다. 윤 부장은 이어 "뜻하지 않게 많은 선후배들에게 부담을 안겨준 것 같아 마음이 무거우면서도 너무 감사하다"며 "반드시 암을 이기고 건강한 모습으로 선후배들을 찾아 마음의 빚을 갚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설명=윤승한 무등일보 지회장이 지난달 30일 서울 강남세브란스병원은 방문, 암 투병중인 윤한식 부장에게 성금을 전달하고 있다.
광주전남기자협회 13-05-24 조회5111
광주전남기자협회 14-07-02 조회141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