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칼럼 본립도생(本立道生) 이상용 전남대병원장 최근 수많은 생명을 앗아간 잇단 대형 화재참사로 인해 국민들의 충격과 아픔이 크다. 이번 사건들은 가장 필수적으로 지켜야 할 건물 내 안전관리 규정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아 더 큰 화(禍)를 부른 인재였다. 특히 이런 참사가 많은 환자들이 입원해 있는 병원에서도 가끔씩 발생한다는 사실이 더욱 안타깝고 우울할 뿐이다. 사고 때마다 재발방지를 구호처럼 외치지만 자꾸 참사가 반복되는 것은 바로 지켜야 할 기본을 외면했기 때문이다. 이같은 참사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기본을 지켜가자는 바램에서 논어에 나오는 사자성어 ‘본립도생’(本立道生·기본이 바로 서면 길 또한 자연(自然)스럽게 생긴다는 뜻)을 되새겨 본다. 지난해 10월 전남대병원 제32대 병원장이라는 무거운 책임을 안게 된 필자는 보다 기본에 충실하자는 마음가짐으로 무술년 새해의 병원 운영 목표를 세웠다. ‘건강한 생명, 행복한 미래 전남대학교병원’이라는 슬로건을 걸고 환자의 안전과 건강을 위해 진료·연구·교육이라는 본연의 업무에 더욱 충실해 나아갈 것을 전 직원과 함께 다짐했다. 올해 계획 중 주요한 두 가지 정책을 꼽는다면 연구력 강화와 활발한 공공의료 활동 전개를 들 수 있다. 지난 1910년 광주자혜의원으로 시작해 전국 최고의 지역거점병원으로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전남대병원이 이제는 급변하는 의료환경에 적응하고 국제적 의료경쟁력을 갖춰 새로운 인술 100년의 시대를 열어가고자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더욱 탄탄한 기반을 쌓아야 하는데 그게 바로 연구력 강화다. 전남대병원은 전국 최고 수준의 연구력을 갖고 있기에 이를 발현시켜 최상의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해 나갈 방침이다. 또 하나의 목표는 국내외를 구분하지 않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자를 돕기 위해 적극 나서는 등 공공의료기관으로의 역할을 강화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정상적인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회적 취약계층에게 보다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국립거점병원 본연의 업무도 지속적으로 수행해 나갈 것이다. 이런 연구력 강화와 지역 의료계의 중추적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최첨단 의료장비와 시설을 갖춘 복합메디컬센터인 새 병원 건립을 추진할 방침이다. 이같은 목표를 반드시 달성해 오늘의 전남대병원이 있도록 사랑과 관심을 베풀어 준 지역민에게 기본을 충실히 갖춘 최상의 의료서비스로 보답할 것을 다시 한번 다짐한다. 끝으로 건강하고 행복한 지역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해 앞장서고 있는 광주·전남기자협회의 새 집행부 출범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귀한 지면을 할애해 준데 대해 진심으로 감사의 뜻을 전한다.
광주전남기자협회 18-04-19 조회3576
시장 원리 어긋난 언론계… 발전적 대안 필요 중앙·지역 언론사 퇴직자 늘어취재역량·저널리즘 약화 우려조직문화·임금인상 개선돼야 한선(호남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기자들이 회사를 떠나고 있다. 비슷한 언론사로 이직하는 경우도 있지만 아예 언론계를 떠나버리는 경우도 있다. 이들이 이직을 꿈꾸는 주요 이유는 불투명한 미래 비전과 열악한 임금상황. 현재도 암울하지만 참고 기다린다고 미래가 달라지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광주전남기자협회가 최근 언론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결과를 확인하며 묵직한 돌덩이가 짓누르는 듯한 답답함이 느껴졌다. 내가 친정으로 생각하는 지역 언론은 제자들이 가장 많이 진출하는 곳 아닌가. 언론계의 이직현상을 깊이 들여다본 적이 있다. 학위논문을 쓰던 2000년대 초반인데 그때도 언론계는 이직현상이 심심치 않게 확인됐다. 당시는 언론사 간 이직보다는 언론계에서 다른 분야로 진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주로 지방정부나 지역정가의 홍보 관련 업무로 옮기는 경우가 많았고, 그 때만 해도 지역 언론계에서는 이를 두고 상반된 정서가 감지됐다. 비판과 견제의 대상이던 지방정부의 ‘입’이 되는 아이러니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이런 비판기류마저 희미해졌다고 한다. 약간의 체념과 부러움이 섞여 있는 반응이 더 많을 정도라고 한다. 이번 조사에서도 이직현상에 대한 긍정적 반응이 70%에 이르렀다. 과거 이직현상에 대한 비판 기류와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최소한 현재 지역 언론의 현실을 짐작하기엔 충분한 답변이었다. 물론 언론계의 탈기자화 현상이 우리 지역만의 문제는 아니다. 중앙언론계에서도 기자들의 이탈현상은 지속돼 왔다. 엊그제까지 공중파에 몸담던 기자들이 정부의 대변인으로 옮기기도 하고, 대기업의 홍보실로 이직하기 위한 큰 그림(빅피처) 속에 스펙 관리용으로 언론사를 택한 것이 아닌지 의심받을만한 일도 벌어지고 있다. 미디어오늘 보도에 따르면 업계 1위를 자랑한다는 조선일보에서마저 최근 10년간 입사한 기자 106명 가운데 40명이 퇴사했다고 하니 10명 중 4명은 언론계를 미련 없이 떠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닌 것 같다. 가히 언론계의 ‘엑시트 현상’이라 할 만한 상황이 중앙 언론계에서도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연공서열 중심의 기수문화, 순환보직으로 인한 전문성 확보의 어려움, 기자의 자율성을 담보하기 어려운 경직된 조직문화가 세대 간 가치관의 충돌을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이 주요 요인으로 제시됐다. 그런데 이번 광주전남기자협회 조사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1순위로 제시된 열악한 임금문제다. 복수응답으로 제시된 결과였지만 절반 가까운 45.6%가 기자들의 임금 인상을 이직의 제1 해결책으로 꼽았다. 당장의 임금도 문제지만 연차가 올라가고 직급이 높아지는데도 연봉이 올라가지 않는다는 점도 문제라고 지적됐다. 이렇듯 최소한의 품위를 유지하기도 어려운 임금수준은 기자들을 불필요한 유혹에 빠지게 한다. 시장의 작동원리에 어긋나는 기이한 언론계의 ‘산업적 실패’가 언제든지 ‘저널리즘적 실패’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우려는 잘 알려진 대로 기존 연구에서 이미 확인된 사안이다. 안타까운 것은 지역 언론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비판하기는 쉽지만 발전적인 대안을 제시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칼럼을 쓰며 돌덩이의 무게만 더해질 뿐이었다. 그럼에도 한마디 덧붙이고 싶다. 기자들이 최소한의 품위를 지키며 유혹에 빠지지 않을 정도의 임금수준을 해결할 자신이 있을 때 언론사를 운영해야 한다.
광주전남기자협회 23-07-05 조회595
80년간 지킨 레지스탕스 정신, 거대 미디어 위협 막아내다 프랑스의 지역언론을 보다<1> 우에스트 프랑스 2차 대전 속 1944년 창간 프랑스 서부 지역지일 유가부수 60만부, 중앙지 크게 웃돌며 1위비영리 법인에 그룹 경영권…독립성 유지 비결‘자유와 정의’ 사시 내걸고 인본주의 헌장 발표 국제ABC협회의 프랑스 지부 격인 신문발행부수 인증기관 ACPM(Alliance pour les Chiffres de la Presse et des Médias)이 발간하는 연간 보고서에는 보는 이의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사실들이 포함돼 있다. 유가부수 발행 순위의 맨 윗자리를 차지하는 신문사가 중앙지가 아니라 지방지인 것이다. ‘프랑스 서부’라는 뜻의 <우에스트 프랑스>(Ouest-France)는 1975년 이후 1등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다. 지난 2022년 기준 하루 유가부수 60만2830부를 기록한 <우에스트 프랑스>는 한국인들에게도 익숙한 유력 언론 <르몽드>(Le Monde 48만8802부)와 <르피가로>(Le Figaro 35만4662부)를 멀찌감치 앞서 있다. 최고치는 2001년으로 매일 79만6736부를 찍어내기도 했다. 1944년 8월7일 창간호를 낸 이후 올해로 80년째를 맞고 있는 <우에스트 프랑스>가 발행되는 지역은 프랑스 서부 14개 데파르트망(Département)으로 이른바 영불해협이 있는 노르망디와 브르타뉴 지역을 총망라한다. 데파르트망은 한국으로 치면 도(道) 쯤 되는 행정구역인데 해당 지역의 인구수를 합치면 1000만명을 웃돈다. 창간호 1면에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레지스탕스 세력의 구심점 역할을 했던 드골 장군과 연합군을 맞이하는 렌느 시민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 실렸다. “드디어 해방”, “렌느가 해방군을 열렬히 환호하다”와 같은 제목에서 당시 시민들의 흥분을 느낄 수 있다. 신문 발행지역인 노르망디를 통해 들어온 연합군의 진격 소식은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사건이기에 앞서, <우에스트 프랑스> 독자들에게는 지역 뉴스였다. 서부의 거점도시 격인 렌느(Rennes)가 해방된 것은 8월4일이니까, 해방된 지 사흘 만에 새로운 신문이 창간한 것이다. <우에스트 프랑스>의 전신이라고 해도 좋은 <우에스트 에클레르>(Ouest-Éclair)가 폐간한 지 딱 일주일 만이었다. 1899년 8월에 창간한 <우에스트 에클레르>는 2차 세계대전을 맞으며 나치 독일에 점령당한 프랑스의 여러 다른 매체와 마찬가지로 선택의 기로에 섰다. 잠시 펜을 꺾고 후일을 도모할 것인가, 나치에 협력하더라도 신문 발행을 지속할 것인가. <우에스트 에클레르>의 경영진은 현실적인 판단에 의해 후자를 선택하지만 그 결정에 반대하는 두 언론인은 제 발로 신문사를 나오게 된다. 그렇게 신문사를 떠나 절치부심하던 폴 위탱-데그레(Paul Hutin-Desgrées)와 프랑수아 데그레뒤루(François Desgrées du Loû)는 해방되기가 무섭게 <우에스트 프랑스>라는 새 이름으로 현장에 복귀했다. 나치 협력자로 구분된 <우에스트 에클레르>의 경영진들은 나중에 중형을 면치 못했다. 새 신문의 사시는 ‘자유와 정의’이고 여기에 이르는 세 가지 원칙은 인본주의, 기독교 민주주의, 사회적 자유주의 세 가지였다. 이들은 1990년 6월 자체적으로 뉴스 헌장을 발표했다. 그 첫 줄부터 언론인이 지켜야 할 규칙, 즉 지적 정직성, 신중한 글쓰기, 인간 존중의 정신이 잘 반영돼 있다. “해를 끼치지 않고 말하고, 충격을 주지 않고 보여주고, 비난하지 않고 비판하고, 공격하지 않고 증언한다 ”. 1990년은 <우에스트 프랑스>의 역사에서 특별한 해다. 신문사의 지배구조에 큰 변화가 생겼기 때문이다. 공동창업자인 두 명의 언론인이자 레지스탕스 운동가, 폴(1888-1975)과 프랑수아(1909-1985)는 혼인으로 연결된 친족관계였기에 <우에스트 프랑스>는 사실상 이들 가문의 소유로 봐도 무방했다. 신문사의 경영은 가업을 이어받아 언론인의 길을 걸은 폴의 둘째 아들 프랑수아-레지스(1919-2017)가 주로 맡았다. 1961년 평기자로 입사해 가장 오랜 시간 신문사 운영에 참여했고, 사망하기 바로 이전 해인 2016년까지도 기고를 멈추지 않았던 프랑수아-레지스는 지금의 <우에스트 프랑스>를 있게 만든 인물이라 할 수 있다. 그런 프랑수아-레지스가 내린 1990년의 결단은 바로 비영리 법인 설립이었다. 그는 설립의 취지를 이렇게 설명했다. “협회는 사원의 수호자가 될 것이다. 사원은 신문의 정신이며, 이것이 독자의 신뢰를 보장하는 신문의 힘이다. 이곳은 비영리 협회이며 배당금을 분배하지 않고, 주식도 없다. 따라서 우리가 경영하는 방법을 안다면 독립성은 영원히 보장된다. 이는 내가 떠난 후에도 계속될 것이다.” 인본 민주주의 원칙을 지지하는 협회(Association pour le soutien des principes de la démocratie humaniste)라는 이름의 이 비영리 법인은 <우에스트 프랑스>가 포함된 우에스트 프랑스 미디어 그룹 전체를 지배하고 경영한다. 그룹 내 사업 영역은 일간지 외에 전문지, 라디오, 웹사이트, 출판사, 홍보대행사 등으로 다양하고 총 직원 수가 5500여명에 달한다. 법인은 각계인사 60명으로 이사회를 구성하고 있다. 현 회장은 2010년을 전후해 르몽드 미디어 그룹 회장을 역임한 언론인 다비드 기로(David Guiraud)이다. 이러한 독특한 형태의 지배구조는 우에스트 프랑스 미디어 그룹이 자본과 이념으로부터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로 꼽힌다. 프랑수아-레지스는 “외부든 내부든 모든 가능한 포식자로부터 우리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 문제이다. 1944년 이래로 우리는 신문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신문이 그 누구의 수익원이 되는 것을 항상 거부해 왔다”고 강조했다. <우에스트 프랑스>가 지방지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전체 판매부수 1위 신문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쥔 게 우연이 아니었다. ◆정상필 글작가 파리8대학 불문과를 졸업하고 광주일보에서 기자로 일했다. 프랑스 여인과 결혼해 네 아이의 아빠로 살고 있다. 파리와 서울을 오가며 살다가 최근 다시 프랑스에 정착해 가이드와 운전을 호구지책으로 마련했다. ‘기사’가 된 ‘기자’랄까. 지은 책으로는 ‘메종 드 아티스트’, ‘메르씨 빠빠!’, 옮긴 책으로는 ‘부자들의 역습’, ‘지정학에 관한 모든 것’, ‘집 안에서 배우는 화학’ 등이 있다.
광주전남기자협회 24-03-27 조회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