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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범 기자의 문화에세이] 진정한 쉼(休)을 위하여

작성자 : 광주전남기자협회 (211.198.190.***)

조회 : 3,763 / 등록일 : 15-09-03 14:48

 

 

 

김종범 기자의 문화에세이

 

진정한 쉼(休)을 위하여

 


“내가 삶을 행운의 기회로 여기는 까닭은 매순간 살아있는 존재로서 아침마다 햇살을, 저녁마다 어두움을 맞이하는 행복을 누리고 있기 때문이며, 세상의 만물이 탄생할 때의 그 빛을 여전히 잃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피에르 쌍소 산문집<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 중에서

 

“쉬어도 쉬는 게 아니야”, “월요일만 되면 더 피곤한 것 같아”


아마 대부분의 직장인들이라면 입에 달고 사는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주 5일 근무제로 매주 이틀간의 꿀맛같은 휴식이 기다리는 현실에서 무슨 배부른 소리냐구요? 글쎄요. 쉬는 날이 부쩍 많아지긴 했습니다. 명절연휴를 비롯해 각종 공휴일에다 여름휴가, 연월차 정기휴가까지 더하면 1년에 석 달 가량은 일로부터 벗어나는 셈입니다. 여기에 대체휴일제까지 도입되는 것을 보면 세상이 많이 좋아지긴 했습니다. 물론 회사 오너나 고용주 입장에선 탐탁치 않겠지만요.


그런데 늘어난 휴식의 양만큼 휴식의 질이 비례하지 않는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쉴 수 있는 시간은 차고 넘치지만, 정작 그 시간에 어떻게 잘 쉬고 삶의 질을 높이느냐가 숙제로 남습니다.


대한민국의 피곤한 샐러리맨들에게 여가생활이라고 해봐야 잠자기나 TV시청이 고작입니다. 어린 자녀를 둔 기혼자들에게 주말이나 휴일은 더 고역입니다. 키즈카페나 놀이공원에 가서 줄서기는 기본. 영화관이나 박물관, 축제장이든 어디든 떠나야하는 강박증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최근에는 캠핑이나 텃밭 가꾸기가 여가의 트렌드로 떠오르면서 휴일에 여유있게 늦잠 자는 일은 언감생심이 되버렸습니다.


직장인들의 만성병이라고 부르는 ‘월요병’도 알고보면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가요? 휴식을 통해 몸과 마음을 재충전하기는커녕, 되레 주말사이에 에너지가 방전된 채 출근 하는 일이 허다합니다.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냈다는 ‘빨리 빨리’ 문화와 ‘초고속’으로 대변되는 우리 사회의 강박증이 휴식 문화까지 잠식해 버릿 탓일까요?


‘쉬다(休)’와 ‘기술(Tech)’의 합성어인 ‘휴테크’라는 말은 한가할 틈마져 허락하지 않은채 휴식마져 자기계발의 도구로 전락해버린 우리 사회의 단면을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웰빙’과 ‘힐링’...수년 전부터 우리 사회의 화두로 부각된 용어들입니다. 잘 먹고 잘 사는 일은 누구에게나 최대 관심사입니다. 그리고 잘 먹고 잘 사는 일 못지않게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되는 일이 바로 잘 쉬기(Well-resting)입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피에르 쌍소는 산문집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에서 구체적인 여가의 기술을 제시하고 있는데요. 우리네의 획일적인 여가 문화와는 그 차원이 다릅니다.


한가롭게 공원을 거닐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위(無爲)의 경지에 빠져보고, 포도주를 음미하며 삶의 깊이를 느껴보는 일 등등....


오늘 나에게 하루의 휴가가 주어진다면 어느 이름모를 시골역에서, 예술영화 전용극장이나 북카페에서, 혹은 호젓한 산책길에서 오롯이 나만의 여가시간을 만끽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저는 붉게 물든 저녁노을을 배경으로 팻 메스니(Pat Metheny)나 노라 존스(Norah Jones)를 들으며 여수 또는 해남행 시외 버스를 타고 있을 겁니다.

 

<BBS 광주불교방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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