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설명>2012년 봄, 프랑스 파리 에펠탑 앞에서 2015 광주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시민응원을 펼치고 있다. 되돌아 본 나의 기자생활 김 원 자전 광남일보 편집국장·호남대학교 초빙교수 김원자 교수는 광주교육대학을 졸업하고 광주일보(구 전남일보)기자로 언론계에 들어와 전남일보에서 부장, 광남일보에서 편집국장, 논설실장을 지냈다. 2002년부터 호남대학교 초빙교수로 지역문화에 대한 강의를 하고 프리랜서 작가로 신문과 잡지에 남도지역의 역사와 인문, 사람들 이야기를 쓰고 있다. 저서로는 문화평론 『이제 삶의 문화를 이야기하자』(2002), 『모바일혁명』(2007)이 있으며, 칼럼집『화살과 노래』(2004), 소설 『환율천재가 된 홍대리』(2010), 에세이집 『보길도 기행』(2014)을 펴냈다. 내가 대학 졸업을 하고 가진 첫 직업은 8년 전에 졸업한 초등학교 교사였다. 교육대학교를 졸업했으니 당연한 일. 그런데 왜 하필 모교로 발령이 떨어져 버렸을까. 집에서 보면 들판 하나를 건너 빤히 바라보이는 학교와 들판은 너무도 익숙한 것이었고, 내 눈에는 정체된 공간으로만 보일뿐이었다. 모든 일이 아버지의 공작 때문이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일본에서의 징용생활과 6·25전쟁을 겪은 아버지의 사고 속에는 가족은 항상 함께 있어야 한다는 것, 특히 딸에게 타지생활이란 늘 불안의 요소였기 때문에 교육청에 입김을 넣어 고향집으로 다시 끌어들여버린 것이었다. 학교라는 직장은, 특히 할머니와 부모님이 계신 내 집에서의 직장생활은 참으로 안온했지만 내가 바라던 것이 아니었다. “이렇게 편안하게 살려고 기를 쓰고 그 공부를 했더란 말인가. 세상이란 물살은 얼마나 멋지고 바쁘게 돌아가는데 나는 한걸음 비껴선 이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단 말인가.” 그런 생각이 들자 그 생각은 바이러스처럼 내 몸에 파고들어 자나 깨나 학교를 그만 둘 궁리만 하게 됐다. 그 후 학교를 떠나 뉴스라는 세파를 몸으로 겪는 언론계에 들어와서 나는, 아버지가 생전에 예언했던 ‘아스팔트길을 버리고 자갈길을 택한 벌’을 톡톡하게 받으며 살았다. 어느 때는 세상과의 갈등이 있었고, 직장에서는 앞날이 보장되지 않는 불안과 내가 가진 능력에 대한 회의가 몰아칠 때도 많았다. 아스팔트길 버리고 자갈길 택해 55세 정년퇴직. 미련도 후회도 없었다. “내가 택한 길 위에서 최선을 다했느냐, 얼렁뚱땅 시간만 메꾸었느냐”는 질문 앞에 그래도 최소한 나는 “옆길을 훔쳐보지 않으며 언론인으로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했다”는 걸로 위안을 삼으려고 한다. 퇴직하면서 ‘인쇄물로 기록하는 일’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세 권의 책을 펴내게 되었다. ‘모바일혁명’, ‘환율천재가 된 홍대리’, ‘보길도기행’ 등 세권 모두 다른 분야의 책이다. 사람들이 나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헷갈려한다. 오지랖이 넓은 것이냐고 묻는다. 아니다. 나는 그냥 세상사에 아직도 호기심이 많은 전직기자일 뿐이다. 기자는 전방위형 인간이어야한다고 생각한다. 한 분야를 2년 정도 취재를 하면 책을 펴낼 수 있다. 보길도 여행 중 만난 보길면 면장과 식사를 하면서 그의 고민을 들었다. 보길도 관광이 최근에 청산도에 밀리고, 관광을 오더라라도 잘 뚫린 보길대교를 통해 차로 쌩하게 왔다가 쓰레기만 남기고 돌아가 버린다는 것이었다. “보길도를 더 잘 홍보하고 싶다”는 그의 고민을 풀어주려고 기획한 책이 올해에 펴낸 ‘보길도기행’이다. 단순한 정보책자가 아니고 전적으로 나의 주관이 섞인 에세이다. 그래서 김나흔이란 필명을 지었다. 김나흔이란 이름으로 나는 객관성이 떨어지더라도 더 자유로운 글을 쓸 수 있을 것이다. 비로소 나의 독자들을 얻을 수 있었다. 한국관광공사로부터는 책을 기반으로 보길도관광을 업그레이드할 인문관광프로젝트를 받았다. 보길도서 보길도 프로젝트 실천 그래서 지난 8월 이후 보길도에 들어와 아주 살면서 일본 나오시마 섬의 ‘이에 프로젝트’를 벤치마킹한 힐링하우스 ‘비파원’프로젝트를 실천하고 있다. 한 시인이 7년째 비워둔 흙집, 돌집을 수리해 시와 음악과 그림이 있는 풍경을 만들려고 한다. 세연정과 직통하는 오솔길도 만들 것이다. 내가 필명을 하나 만들고 싶다고 하자 역술인 친구가 지어준 이름이 ‘나흔( )’이다. 무슨 뜻이냐고 물었더니 “칼로 나무를 쳐 앞길을 불을 밝히듯 환하게 하다”란 뜻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름에 칼도(刀)획도 들어있다. 새로 지은 이름 탓인지 올 여름 보길도에 들어와서 실컷 낫과 호미를 들고 살았다. 7년째 비워둔 집이라서 칡넝쿨이 인도네시아 오지 밀림처럼 얽혀버린 집이었다. 평생 한 것보다 더 많은 노동력을 삼킨 집이 점점 꼴을 드러내고 있다. 칡넝쿨 밑에서 겨우 생명을 유지하고 있던 차나무가 잎사귀에 윤을 내더니 요즘은 하얀 차꽃을 예쁘게 피워내고 있다. 뜰에 여러 그루의 비파나무가 있어 ‘비파원’이라는 이름도 그 때 지었다. 갑자기 풀숲 속에서 돌집 지붕이 드러나고 불이 켜지자 지나가던 동네 사람들도 한 번씩 들여다보며 묻는다. “집이는 여그 뭐 하러 왔소? 나는 그냥 살으라 해도 못 살것그만?” 나도 그게 궁금하다. 이 나이에 나는 왜 보길도에 들어와 손과 발에 가시를 찔리며 모기와 싸우고 있는가? 관광공사의 프로젝트 때문이라면 구태여 이곳까지 오지 않더라도 광주에서 사무실을 하나 내고 컨설팅을 하는 컨셉으로 갈 수도 있었다. 그런데 나는 아직도 ‘관광’이라는 사건이 일어나는 현장에 있고 싶다. 다시 돌아가신 아버지의 말씀이 들린다. “너는 왜 아스팔트길을 버리고 자갈길을 가려고 하느냐?” 비명에 간 모 대통령의 말을 빌려 “운명이다”라고나 할까? 사람은 누구나 두 개의 길을 갈 수 없기 때문에 한 길을 택하는 것이다.
광주전남기자협회 14-11-12 조회4983
<사진설명>▼전남경찰청 방문한 강민창 치안본부장. 강전 본부장은 재직당시 서울대생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실을 보고받았으나 사건의 파장을 우려해 은폐와 축소로 일관했다가 구속되는 비운을 맞았다. 되돌아 본 나의 기자생활 위 성 운전 남도일보 편집국장·주필 위성운 전 주필은 - 옛 전남일보 입사 - 광주일보·중앙일보 기자 - 무등일보·광남일보 부장·부국장 - 남도일보 편집국장·주필 글쓰는 직업인 잊어서는 안 돼 교육대학을 나와 언론계에 뛰어든 무모한 결단이 과거사의 맨 앞자리에 다투어섰다. 고생스런 말년을 맞아도 싸고 어머니 눈물을 보게 했던 진로 수정으로 눈만 뜨면 취재하고 기사 쓰고 마시는 생활이 막이 올랐다. 옛 전남일보 사주의 주석 슬로건인 ‘마시는 저녁’, ‘일하는 아침’을 충실히 이행하는 얼치기 기자 생활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석간이었던 탓에 낮부터 시작되는 음주벽은 독서와 가계를 뒷전으로 한 채 지속됐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주석에서 이따금씩 올바른 기자상 정립과 글쓰기에 대한 고민이 진지하게 펼쳐졌다는 사실이다. 그런 고민은 죄의식이 되어 어쩌다 술을 멀리할 때면 문장 강화 서적을 뒤적이도록 강요했다. 틈새 공략 끝에 단락 구성법을 깨득하고 사설(논술문)은 사실과 의견이 기본 요소라는 이론을 겨우 알게 되었다. 글 못쓰는게 기자에겐 최대의 부끄러움이다. 그런 어두운 과거사는 거짓으로 고백되어서는 안 된다. 역사는 교훈을 얻기 위해 배운다는 명제를 인정한다면 부끄러운 과거를 드러내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독사’가 아호가 된 사건기자 10년 외인부대들이 왜 그리도 술에 탐닉하는 생활에 빠져드느냐고 물어 올 때면 사건기자가 유일한 응대 무기였다. 길지 않은 언론종사 기간에 10년쯤 사건 현장을 누볐으므로 그럴싸하게 포장할 수 있었다.그 기간에 서부, 광주경찰서를 비롯 전남지방경찰청, 검찰, 법원을 두루 커버했다. 전남일보 선무정 선배가 ‘독사’라는 별명을 지어줄 때도 사건기자 시절이었다. 사건기자는 주변의 민원을 해결해야하는 2중고가 유난히 심하다. 현역을 떠난지 10여년이 흘렀지만 죄의식과 뿌듯함이 교차하는 기사나 민원들이 아직 살아남아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광주일보 시절 어린이 날이었다. 전남대병원 응급실에서 여자 초등학생이 치료를 받고 있었다. 이 학생은 집안에 있는 박카스 병에든 내용물을 마신 후 통증이 일어 병원에 실려왔다. 그가 마신 병에든 액체는 박카스 액이 아닌 농약이었다. 아버지가 텃밭에 쓰려고 담아두었던걸 박카스로 오인하여 마신 것이다. 병원에서는 농약을 마신 어린이 잎에서 거품이 나오니까 간질환자로 단정하고 엉뚱한 치료를 하다 목숨을 잃게 만들었다. 항상 값진 제보를 해주던 김 모 간호사가 당직한 날이었다. 경찰 수사를 받은 후 상냥함이 사라진 그 간호사의 굳은 모습이 아물거린다. 이런 기억도 되살아난다. 전매청 사무관의 횡령 사실을 보도해 그 자리를 물러나게 한 사건이다. 그는 재직 중이었던 신문사 실세 간부의 인척이었다. 그 간부는 이른 아침부터 편집국에 들려 출고된 기사를 막으려고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편집국장과 사회부장은 사주의 최측근인 이간부의 압력에 굴하지 않고 기사를 내보냈다. 중앙일보로 자리를 옮기게 된 원인 기사였다. 기사를 살려준 상사분에 대한 경외심과 피해 실세와 당사자분에 대한 죄의식이 지금도 따라다닌다. 희대의 소매치기 대부 장이천이 일부 인사에게 정기적으로 상납했다는 사실을 보도해 파문이 일었다. 그 당시 광주지검 계장으로 있었던 친구를 통해 돈 받은 명단을 입수할 수 있었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경찰관과 타사 언론계 후배도 20여명의 명단에 끼어있었다. 연루된 후배가 혼이 나간 듯 사실 확인을 해왔다. “자네 이름은 없데”라고 거짓 답변을 했던 추억이 씁쓸하게 재생된다. 이 기사는 사장되고 말았다. 광주일보 지역 주재기자 아들이 강도 상해 혐의로 구속됐던 사건도 잊혀지지 않는다. 고등학생이었던 박 모 군이 친구 2명과 함께 낮에 주거를 침입해 집에 있던 여인에게 칼을 휘둘러 상처를 입혔다. 이 여인은 광주지검 수사관 부인이었다. 학생 부모는 외아들인 자식 좀 살려달라고 하소연했다. 이를 외면할 수 없어 수사관에게 통사정을 한 끝에 화해서를 받아냈다. 이를 토대로 검사장을 들볶아(?) 선도조건부 기소유예처분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눈뿌리던 겨울밤 교도소를 나온 박 군은 그의 어머니, 아버지와 함께 찾아와 고맙다며 눈물을 훔쳤다. 그 후 단 한번도 연락이 없다. 그당시 선처를 결행한 검사장과 수사관이 아니었더라면 절대 불가 사안이다.그들은 지금도 존경받는 지역 유지다. 후배들에게 술 자제 간곡히 당부 민주화 바람이 거셌던 80년대 후반에는 시국사건이 봇물을 이루었다. 조선대 이철규 4수원지 변사사건, 중앙대 안산캠퍼스 학생회장 거문도 변사사건이 대표적이다. 이철규 민주조선 편집장 사건은 1개월간 중앙 언론사가 톱으로 다루었다. 중앙언론사 법조 캡이 총출동할 만큼 전국을 뒤흔든 사건이다. 신경민 국회의원(MBC), 신재민 전 문화관광부 차관(한국일보)등이 광주에 파견됐던 법조팀장들이다. 기자는 멋진 직업인이다. 무관의 제왕, 제4부의 요원으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으니 멋지지 아니한가. 스마트한 직업인의 놓칠 수 없는 전제 조건은 기자는 글 쓰는 직업임을 인식하는 것이다. 단락 구성이 엉성한 기사나 주장만 있고 근거가 없는 사설을 볼 때면 안타까움이 앞선다. 끼니를 걱정하면서도 정론의 길을 걸었던 송건호 선생은 후배들에게 술 자제를 간곡히 당부했다. 언론계 거목의 글을 읽고 후회와 깨달음의 감정이 일었던 과거의 편린도 빛 바래지 않았다.
광주전남기자협회 14-10-17 조회5007
팽목항에서 길을 묻다 고 규 석 시인, 광주일보 기자(목포) 사월도 잔인한 사월에흔들리는 건 노란 리본인가 바람인가상여도 없이 뒤따르는 곡 한소절도 없이흔한 묘비명 하나 남기지 않고꽃이 진다 주검이 쌓인다이 아름다운 가이야의 정원에 계절을 다 채우지도 못한 채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같이에둘러 간 삼백 송이의 희망을 묻었다오월도 짙푸른 오월에아낌없이 푸른 나무들이 묵념을 올린다풍장으로 사라져간 꽃들의 안부를 묻는다이 땅에 살아남은 자들은오금 저린 분노와 우두망찰한 통곡으로갑오년의 봄을 송두리 채 반납했다 힘겹게, 가슴 저릿한 고통을 참고 견디며희미해져가는 희망의 불씨를 지피고 앙구며애간장을 태우던 기적은 끝내 우리를 외면했다보았는가, 아침 이슬보다 맑고 귀한 영혼들이망망대해를 표류하는 섬이 되어하얀 포말을 토해내며 울부짖는 것을들었는가, 살려주세요 엄마 보고 싶어요간절한 그 이름, 엄마를 목 놓아 부르며얼마나 절박했으면캄캄한 어둠 속 절대 절명의 빛을 찾아벽과 유리창을 긁느라 손톱마저 다 빠져버린그 한 맺힌 외침을잊지 않겠다 꿈에라도 잊을 수 없겠다 운동화 한 짝은 돌아왔는데아직도 물살 거센 맹골 바다 속을 떠돌고 있을 순수하고 아름다워 이름 부르기 조차 아까운 아들딸이여미안하다는 말조차 건넬 수 없는 이 기막힌 천형 앞에누군들 죄인이 아니랴한번만 안아보게 해달라는 간절한 절규가다시는 이 땅에서 울려 퍼지지 않기를이 칠흑 같은 어둠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기를살아남아 부끄러운 사람들 가슴마다꽃다운 주검 헛되지 않게구명조끼 보다 붉은 주홍글씨를 아로 새겼으니이제, 어둡고 차가운 물속을 떠나 평온한 하늘 위로 날아올라 언젠가 이 땅에 봄이 오는 날 이름 모를 풀꽃들로 피어나면 살아서 지상에서 이루지 못한 그대들의 꿈이다시 피어난 걸로 알겠다
광주전남기자협회 14-06-03 조회4706
창간 26주년을 맞은 '정다운 친구 시민언론' 무등일보가 광주 서구 운천로 213 스카이랜드빌딩에 신사옥을 마련하고 새로운 '운천로 시대'를 열었다. 무등일보는 지난 25일 김정수 회장과 김명술 대표이사, 김종석 편집국장 등 임직원 60여명을 비롯해 강운태 광주시장, 이낙연·이용섭·주승용·김영록 국회의원, 윤장현 새정치연합 공동의장, 이석형 새정치연합 전남도당 창당준비 공동위원장 등 각계 인사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사옥 이전 현판식과 기념식을 했다. 김명술 무등일보 대표는 기념사에서 "올해는 4대 지방선거가 실시될 뿐 아니라 KTX 완전 개통, 나주 혁신도시 입주, 아시아문화전당 완공 등 우리 지역의 미래를 좌우할 중대사들이 산적해 있는 중요한 해"이라며 "창간 26주년을 맞은 무등일보는 이번 새 사옥 이전을 '제2의 창간' 계기로 삼겠다"고 밝혔다.김현주 편집위원
광주전남기자협회 14-03-14 조회5157
?칙칙한 분위기에 변함없는 노후시설, 열악하기 그지없던 광주 일선 경찰서 기자실의 환경이 최근 대폭 개선됐다. 이는 구길용 광주·전남기자협회장이 지난 2월10일 장전배 광주경찰청장과의 '이야기꽃'을 나눈 결과물이다.???말쑥해진 환경에 지역 언론의 촉수인 사회부 사건기자들도 크게 반기는 분위기다.?24일 광주 지역 경찰서 출입기자들에 따르면 먼저 노후화의 대명사쯤으로 여겨지던 북부경찰서 기자실이 그야말로 환골탈태했다. ? ?빛바랜 벽면과 곳곳의 묵은 때, 켜켜이 쌓여 있던 먼지는 이달 초 산뜻하게 이뤄진 도색작업과 함께 자취를 감췄다. ?고장난 리모컨과 함께 사실상 TV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S전자의 검은색 名品(명품) 텔레비전도 최신형 벽걸이 TV에 자리를 내줬다. ?냉매관의 고장으로 가끔씩 바닥에 물을 토해내 기자들을 당혹케 했던 키작은 냉장고도 두 배에 이르는 덩치 큰 백색가전에 밀려났다. 한 여름 타는 목마름을?일거에 날려 줄 고급형 정수기도 새롭게 등장했다.?26년째 기자실을 지켜오던 누런 액자는?경찰서 창고로 직행했다. 환경개선을 진두지휘(?) 했던 김학남 서장이 기증한 무등산 전경의 사진이 액자를 대신했다.?? ?북부경찰서 관계자는 "이 같은 환경개선 작업은 1988년 개서 이래 사실상 처음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지난 2007년 신청사로 이전, 타 경찰서 대비 쾌적한 환경을 유지하고 있는 서부경찰서도 출입기자들의 복지향상에 동참했다. ?청사 이전 전부터 사용해 오던 10여년 된 아날로그 TV는 HD 42인치 디지털로 교체됐다.?아울러 신속한 보도를?지원하기 위한?인터넷 환경도 보완됐다.?또 각양각색의 다과를 수시로 제공, 업무에 지친 기자들의 입맛을 돋우고 있다. ?기존 관리나 정비가 이뤄지지 않았던 광산경찰서 기자실도 변모하고 있는 모습이다. ??1년여 째 방치돼 내부에 곰팡이가 피었던 정수기가?보수되는가 하면 커피 등 각종 음료가 새롭게 제공되고 있다. ?외부인의 상시 출입과 함께 일부 경찰관들의 흡연실화 됐던 문제도 해결될 전망이다. 출입문에 번호키 설치를 추진중인 것. ?단 5개 경찰서 중 가장 열악한 인터넷 환경의 개선은 앞으로 보완해야 할?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 같은 광주권 3개 경찰서의 적극적 움직임은 동부경찰서와 남부경찰서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북부경찰서 출입기자단 전원(무등일보) 간사는 "사건기자들이 오로지 일에만 전념 할 수 있는 쾌적한 환경이 조성돼 매우 기쁘다"며 "나머지 2개 경찰서도 같은 여건이 갖춰졌으면 한다"고 말했다.?구길용 광주·전남기자협회장은 지난해 12월 기자협회장 선거운동 중 5개 일선 경찰서 기자실을 둘러보고 열악한 환경을 확인했다. 이후 취임 첫 과제를 경찰서 기자실 환경개선으로 정하고 장전배 광주경찰청장을 만나 필요성을 설명했으며 장 청장도 적극 공감했다. 장 청장은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주야 불문, 현장을?누비는 사건기자들의 불편함을 해소하는데 일조하겠다”고 화답했다.구용희 기자(뉴시스)
광주전남기자협회 14-03-14 조회4614
일본 방사능 취재에서부터 최근의 조류독감과 폭설까지... 기자들의 재난재해 도는 끊임이 없다. 하지만 일선 언론사는 물론 한국기자협회에서도 아직까지 제대로 된 재난 재해 보도 지침은 마련돼 있지 않다. 지난 2012년 일본 방사능 취재에서 국내 기자들의 방사능 노출 사고가 발생한 뒤 ‘위험지역 취재보도 시스템 개선을 위한 정책적 방안‘을 연구한 명지대학교 홍은희 교수는 각 언론사가 공통으로 채택할 수 있는 취재안전 표준 매뉴얼을 우선순위로 꼽는다. 홍 교수는 “표준 매뉴얼은 취재 현장의 위험도에 따라 전쟁 수준의 1급 위험지역, 지진 등 2급, 화재와 폭력시위 등 3급 지로 나눠 기본장비와 준비 물품을 지정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실제로 재난 재해 보도와 관련해 선진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일본의 경우 엄격한 기준을 세워놓고 있다. NHK는 조류 독감과 같은 전염성 질병 취재와 관련해 ‘병원체의 성질이 밝혀지지 않았다면 증상이 있는 환자에 대해서 대면취재는 원칙적으로 실시하지 않고 전화 취재 등을 검토한다‘고 기준을 세우고 취재보다 기자들의 안전을 우선시 하고 있다. 또 국내 기자들이 방독면과 같은 기본 물품조차 없이 화재 현장에 뛰어드는 것과는 달리 아사히 신문은 위험지역 취재 핸드북에서 방한용 속옷, 안경이 깨졌을 때를 대비한 예비 콘텍트 렌즈, 식음료까지 유사시에 필요한 기본 물품을 52가지로 분류해 취재 출발 전에 갖추도록 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극심한 경쟁에 내몰려 위험을 무릅쓰고 취재하는 방식을 개선할필요도 있다고 지적한다. 관련해 영국에서는 지난 1995년부터 ‘센추리언 리스크 서비스 과정’을 만들어 5일 과정으로 ‘응급 처치’와 ‘안전관리법’ 등을 교육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언론재단이 지난 2004년과 2008년 관련 교육을 실시했지만 단발성에 그치고 있다. 기자협회와 언론재단을 중심으로 정기적으로 전 기자를 대상으로 한 교육이 필요한 부분이다. 언론사 마다 재난재해 보도의 1보는 인근 지역에 있는 기자들의 몫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준비 절차와 더불어 사후 지원 또한 중요하게 지적된다. 실제로 조류독감과 살인, 화재 현장을 겪은 기자들은 호흡기 질환같은 가벼운 증상을 물론이고 정신적 충격을 호소하기도 한다. 하지만 질병과 공포를 백안시 하는 문화 탓에 드러내 놓고 치료를 받거나 지원을 받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전문가 집단을 중심으로 한 상담과 치료 시스템의 확충이 필요하다. 다양한 매체의 발전과 더불어 독자와 시청자들의 눈길을 잡기 위한 언론사들의 노력은 눈물겹다 국내외에서 발생하는 재난 지역과 위험지역의 취재는 이런 경쟁 과정에서 늘어나는 추세다. 이런 분위기 속에 현장에 던져진 기자들도 안전보다는 위험을 감수하는 취재 형태를 보일 수밖에 없다. ‘불합리한 위험을 감수해서는 안 된다’ 로이터 통신의 이 취재지침은 기자와 데스크, 책임자의 재난 취재 결정 과정에서 가장 우선시 되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확인해 준다. 김효신 편집위원
광주전남기자협회 14-03-14 조회3977
‘기자정신’ 앞세워 위험지역 내몰아재난취재 매뉴얼 KBS 1곳뿐…방독면?안전모엔 곰팡이 기자들에게 현장은 숙명이다. 현장의 1차 기록자나 마찬가지인 기자들은 사실 확인을 위해 환경에 구애받지 않고 끊임없이 현장을 누빈다. 그만큼 현장은 가혹하다. 재난 취재 현장은 더 가혹하다. 태풍에 엿가락처럼 휘어진 철골 구조물 사이를 오가기도 하고, AI 등으로 인해 가축이 살처분되는 현장을 지켜보기도 해야 한다. 도처에 위험들이 도사리고 있고, 생명의 위협조차 느낄 수 있다. 더구나 이상기온 등으로 폭설, 폭우 등 자연재해가 많이 발생하고 있는 상황에서 기자들은 더 많은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있다. 여러분의 회사는 기자들의 안전을 위해 얼마만큼의 대비를 하고 있을까. 광주·전남 주요 언론사들은 현장을 뛰어다니는 기자들의 안전을 위한 기본 안전장비는 물론 매뉴얼조차 갖추지 않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광주·전남기자협회보 편집위원들이 각 언론사의 재난 취재 장비를 확인할 결과, 지역 언론사 중 재난취재 매뉴얼을 갖춘 곳은 KBS광주방송 뿐이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기자들에게 제대로 교육 되지 않고 있었다. 다른 언론사들은 매뉴얼보다는 ‘기자 정신’을 앞세워 기자들을 취재 현장으로 내보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최근 여수 우이산호 기름유출 사건 당시 가장 기자들에게 필요했던 방독면은 14개 언론사 중 7개 언론사만이 보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1990년 중반 이전에 구입한 것으로 최근 10년 내에 사용한 언론사는 없었으며, 정상 작동 여부도 확인되지 않았다. 일부 언론사의 방독면은 푸르스름한 곰팡이가 피어 있을 만큼 제대로 관리조차 되지 않고 있었다. 공사 현장 등에서 필요한 안전모는 14개 언론사 중 6개 언론사에서만 구비하고 있었으며, AI 취재 등에서 필요한 방진 마스크의 경우는 3개 언론사만 확보하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여수 우이산호 기름유출 사건 당시 현장을 취재한 한 기자는 “나프타 냄새 때문에 현기증이 날 정도였다”며 “기자들에게도 최소한의 안전을 보장 받을 수 있는 안전장비가 지급됐으면 한다”고 말했다.김경인 편집위원
광주전남기자협회 14-03-14 조회4277
기자들은 새로 출발한 광주ㆍ전남기자협회에 문화행사를 늘렸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많이 내놓았다. 이는 최근 기업체와 관공서에서 직원과 가족이 함께하는 문화프로그램을 강화하고 있는 추세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박은성 광주매일신문 사회부 차장은 "프로야구ㆍ프로축구 등 스포츠 단체 관람이나 영화관을 빌려 회원과 가족들이 함께 호흡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으면 좋겠다"면서 "또 문화 행사 때는 평소 기자협회에 도움과 관심을 주시는 분들을 함께 초청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여운창 연합뉴스 차장도 "체육대회는 일 년에 한 차례만 하고 그 대신 문화행사를 늘렸으면 좋겠다. 그렇다고 행사 수만 무조건 늘리지 말고 일 년에 1~2개를 하더라도 내실을 가지고 꾸준히 할 수 있게 만들면 좋겠다"고 건의했다. 연수기회 확대 및 한국기자협회와의 교류 증진에 대한 주문도 나왔다. 배현태 전남일보 사진부 기자는 "출입처에 따라 연수 기회 차이가 큰 것이 현실이다. 기협에서 국내 연수나 해외 연수를 추진할 때 이런 부분에 신경을 썼으면 좋겠다"고 말했고, 오승현 남도일보 경제부 차장은 "연수를 통해 기자들이 휴식도 취할 수 있고, 재충전의 기회를 될 수도 있다고 본다. 최근 몇 년간 기협 연수가 줄어든 것 같은데 기회를 늘려줬으면 한다"고 요구했다. 김대우 무등일보 사회부 차장은 "한국기자협회의 경우 사실상 회장 선거 때만 보고 평소에는 보기가 힘들고 교류도 없는 것 같다. 소속감을 높이는 차원에서라도 연수 등을 통한 교류의 기회를 만들면 좋겠다"면서 "한국기자협회 뿐 아니라 영남이나 충청지역 기자들과 교류할 수 있는 행사를 고민하면 기자들 간의 연대감도 높아질 듯하다"고 밝혔다. 이밖에도 경찰서 출입기자실 환경 개선, 의료혜택 확대, 언론인 자녀에 대한 장학금 지원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왔다.장우석 편집위원
광주전남기자협회 14-03-14 조회3821
부정보다 긍정, 흥미보다 정책 보도 주문언론사 ‘갑질’ 사라졌으면 2014년이다. 참으로 엄혹하고 엄중한 시기다. 과거 엄혹한 시절, 기자들의 삶도 엄혹했다. 80년 5․18이 그랬고, 97년 IMF때도 그랬다.<관련기사 5면> 올해도 마찬가지다. 광주․전남의 미래를 선택할 지방선거의 해이기 때문이다. 고대했던 국립 아시아문화전당이 문을 열고, 나주혁신도시에는 한전이 이사 온다. 그만큼 기자들의 할 일이 많아졌다. 반대로 요구도 많아졌다. “근거 없는 추측성 보도를 자제해 신뢰를 높여야 한다”거나 “기사로 인해 미칠 후폭풍까지 감안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기자와 홍보맨과의 관계에서는 “언론사의 ‘갑질’은 사라져야 한다”며 “협회에서 기자로서의 언행 가이드라인, 에티켓 등을 설정한다면 기자-출입처 관계가 수평적으로 형성될 것”이라고 제안했다. 이제 기자들이 응답할 차례다. 2014년 엄중한 시기에, 언론인으로서 어떠한 시대정신을 담아낼지를….박정욱 편집위원
광주전남기자협회 14-02-19 조회4318
5월 주간인 지난 20일 광주에서 규모는 작았지만 울림은 큰 행사가 열렸다. '오월 광주'가 가쁘게 관통하는 한 복판에서 기자의 날 토론회가 진행된 것이다. 올해는 수구ㆍ보수세력에 의해 광주항쟁을 폄훼ㆍ왜곡하는 행위가 노골화하고 조직적으로 이뤄지는 상황인지라 이번 행사가 갖는 의미는 더욱 컸다. 바로 80년 당시 현장을 지켜봤고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기자들이 한자리에 모였기 때문이다. 사실, 현직기자들에게 '기자의 날'은 다소 생소한 단어일 수 있다. 기념일로 지정된 것도 아니고 반듯한 의례도 치른 적이 없었던 탓이다. 하지만 그날은 분명히 있으며, 그것도 80년 오월광주와 맞닿아 있다. 광주시민들의 붉은 피가 금남로를 적셨던 1980년 5월, 신군부의 사전기사 검열 때문에 광주의 진실을 보도하지 못했던 기자들은 20일부터 제작거부 투쟁에 돌입했다. 그 결과는 '해직'이라는 비수가 되어 그들에게 날아들었다. 이후 광주를 군홧발로 짓밟고 정권을 찬탈한 군부는 1000여명의 기자들의 손에서 펜을 빼앗아 버렸다. '기자의 날'은 이처럼 제작 거부 투쟁을 시작한 5월20일을 기념해 한국기자협회가 지난 2006년 제정했다. 이러한 아픈 과거를 가슴속에 품은 해직기자들은 토론회를 통해 다양한 의견을 표출했다. 80년 광주항쟁 기간 전국적인 언론인 투쟁에 대한 인식 제고를 위해 언론인 투쟁 관련 백서를 만들자는 의견도 제시됐다. 또 당시 국내언론이 정권의 나팔수 노릇만 한 것이 아니라 광주의 참상을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을 법률ㆍ역사ㆍ사회ㆍ문화적으로 공론화해 더 늦기 전에 후대에 떳떳해지고 싶다는 의견도 나왔다. 물론 광주시민들은 피 흘리며 죽어가는데도 '진상' 하나 알리지 못하고 되레 '폭도들의 만행'으로 몰아간데 대한 반성도 뒤따랐다. 만찬장에서는 보다 진솔한 의견이 오갔다. 신군부의 통제 속에 외신을 통해 광주의 참상을 알아야 했던 자괴감에서부터 어떻게든 광주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사비를 들여 기자를 광주로 파견했다는 회고담도 나왔다. 왜곡보도 내용을 놓고 벌인 선배들과의 마찰, 생각을 달리하는 동료들과의 갈등 상황 등도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다들 60을 훌쩍 넘긴 해직 언론인들은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그날을 증언했다. 다음날, 국립5ㆍ18민주묘지를 참배하면서도 그들은 선배 언론인을 먼저 찾았다. 윤상원ㆍ박관현 열사 묘를 안내 받은데 이어 바로 송건호ㆍ리영희 선생의 묘소를 찾아 묵념했다. 그들의 묘비를 어루만지고 묘비명을 읽으며 선배 언론인의 정신을 기렸다. 80년 당시 광주시민들은 외로웠다. 목숨을 건 항쟁에 응원군이 없었다. 몽땅 광주시민들이 홀로 감당해야 할 짐이었다. 하지만 광주는 혼자만이 아니었다. 광주의 진실을 알고, 그 진실을 드러내지 못하게 되자 붓을 꺾어버린 수많은 언론인이 광주와 운명을 함께 한 것이다. 이틀 동안 서울에서 오신 20여분의 해직언론인들은 '젊은 기자'에게 큰 위안을 주고 돌아갔다.
광주전남기자협회 13-05-24 조회4949
커뮤니케이션의 잘못된 신화 남궁협 광주ㆍ전남 민언연 상임대표 커뮤니케이션 행위의 목적이 서로의 차이를 좁히고 공통분모를 넓히기만 하는 것일까? 누구나 이 질문에 당연하다는 듯 주저 없이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어떤 의제를 놓고 여러 사람이 모여 토론을 통해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라든지, 부부는 오래 함께 살다보면 서로 닮는다는 말은 커뮤니케이션의 그러한 의미를 쉽게 떠올리게 한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국회에서 여야 사이에 합의보다 의견충돌이 더 많은 이유는? 부부가 오래 살다보면 서로 닮기보다는 비로소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게 된 것은 아닐까? 심지어 사랑의 감정이 샘솟는 젊은 연인 사이에도 일치감의 희열보다는 티격태격 하는 사랑싸움의 빈도가 더 많지 않은가? 가만히 우리의 삶을 들여야 보면 일치와 통합보다는 불일치와 갈등이 지배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더구나 커뮤니케이션의 빈도가 높은 집단이나 개인일수록 더 많은 갈등과 차이를 노출시킨다. 그렇다면 커뮤니케이션은 통합과는 무관하거나 아니면 정반대로 반비례 관계에 있는 것은 아닐까?인간은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에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칸트는 "인간은 서로 공통의 인식을 할 수 있는 선험적 인식체계를 타고난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이런 논거가 곧바로 커뮤니케이션은 주체와 대상의 일치, 주체와 주체의 일치, 혹은 언어와 사물의 일치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커뮤니케이션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의 공통성보다는 개별성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인간 행위인 것이다. 커뮤니케이션은 인간에 의해서 개별적인 존재들의 의미를 내보이는 행위인 것이다. 가령, 내가 길가에 핀 개나리를 시로 표현하는 것은 그때 그곳에 있던 개나리의 개별적 특성과 그것이 나에게 표상되는 느낌을 특별하게 드러낸 셈이다. 따라서 쌍방의 의미를 동등하게 표출하지 않는 커뮤니케이션은 더 이상 커뮤니케이션이 아니다. 더구나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의 의미를 일방적으로 일치시키려는 커뮤니케이션은 폭력이나 다름없다. 오늘날의 환경파괴도 본질적으로 자연을 대상화해 인간의 의미에 일방적으로 복속시키려는 폭력의 결과인 것이다.그래서 진정한 커뮤니케이션은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게 하고, 제도의 틀에서 배제된 사람들에게 언어를 부여하는 것을 가리킨다. 한나 아렌트가 정치를 "차이를 드러내는 언어적 행위"라고 말한 것처럼, 인간은 의미를 먹고 사는 존재이다. 인간적인 커뮤니케이션이라면 본질적으로 불일치를 지향하지 않으면 안된다. 나와 너의 다름을 확인하는 것, 그래서 새로운 의미를 공유하는 것이 커뮤니케이션이다. 커뮤니케이션은 체제안정을 위한 것이 아니라 체제파괴와 창조를 위한 것이다. 그래서 커뮤니케이션은 불온한 것이다.이러한 커뮤니케이션의 이념을 제도적으로 구현한 게 언론이다. 고로 언론의 생명은 뭐라 해도 '비판'에 있는 것이다. 표현의 기회로부터 배제된 자들의 목소리를 찾아서 그들의 의미를 대신 표현해주는 것이 언론이다. 그래서 수많은 다름과 차이가 표출되도록 하는 것이 언론이다. 결국 언론의 사명은 부단히 기존의 의미를 부정하고 새 의미를 구성하는 데 있다. 이미 자본과 권력이 돼버린 언론은 스스로를 부정할 수 없기 때문에 더 이상 언론이라 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요즘 수많은 미디어가 새롭게 등장하고 있지만 그것이 현실을 부정하는 비판의 칼을 갖고 있지 않다면 그것은 아무런 의미도 창조하지 못하고 인간관계를 파괴하는 흉기로 변모할 수 있다.
광주전남기자협회 13-03-19 조회4339
광주ㆍ전남기자협회에 바란다 민인철 광주발전연구원 연구위원언론의 핵심적 역할은 사회의 구석구석에 묻혀 있어 잘 드러나 보이지 않은 이슈들을 들춰내 이를 의제화함으로써 사회정책 형성이나 정치결정 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지역언론의 상황은 어떤가? 보도자료 위주의 뉴스보도 관행, 심층적인 뉴스 부족, 언론 경영인의 비전문성, 독자 감소에 따른 재정적 어려움 등으로 언론사 운영에 힘이 부친 상황이다.결국 현재의 지역언론은 뉴스원 다양화를 통한 전문적인 뉴스보도 및 지역차원에서 필요한 의제 발굴을 통한 선제적 보도의 역할을 하는 데 있어 한계를 보이고 있다.현재 광주ㆍ전남지역 언론사도 신문 운영에 있어 언론사 간 과다한 출혈경쟁, 광고 수주 등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한 여러가지 방안들이 강구될 수 있겠지만, 필자는 다음의 두 가지를 광주ㆍ전남 기자협회에 바라고자 한다.첫째, 언론의 가치는 다양한 뉴스원 확보를 통해 균형 잡힌 그리고 심층적이고 전문적인 뉴스를 전달하는 데 있다. 우리 지역언론 보도를 보면 관공서 보도자료에 의존하는 비율이 매우 높은 반면 심층적 기획기사가 많지 않음을 보게 된다. 지역언론이 처한 열악한 환경에 그 원인이 있을 수 있겠으나 지역의 다양한 목소리를 전달해야 하는 언론 본연의 역할에 있어 소홀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우리 지역 언론은 앞으로 보다 다양한 뉴스원을 활용한 뉴스 확대 및 심층적 기획기사 비중을 늘릴 필요가 있다.둘째, 광주ㆍ전남 언론은 굵직한 선거가 치러지기 전에 지역의 이슈를 발굴해 내는 과정에 시민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공공저널리즘 보도를 보다 적극적으로 시도할 필요가 있다. 필자는 지난 2007년 대선 전 지역의 한 방송사와 함께 공공저널리즘적 보도 시도에 참여한 적이 있다. 시민들이 원하는 대선의제를 미리 발굴하고 발굴된 각각의 의제에 대한 중요도를 시민의 의견을 통해 부여하고 언론에서 이를 이슈화하고 선정된 의제를 정치권에 전달하는 과정을 진행했었다. 광주ㆍ전남기자협회를 중심으로 우리 지역 언론에서는 대선 및 총선이 치러지기 전에 지역차원에서 필요한 현안을 미리 파악해 지역민과 함께 이를 의제화시키는 공공저널리즘 보도를 적극적으로 시도해주기 바란다.광주시 출연연구기관인 광주발전연구원에서 대외협력홍보단장을 맡고 있는 필자의 개인적 바램도 덧붙이고자 한다. 광주발전연구원은 정책연구의 질을 제고하기 위해 연구위원들에게 각 영역 전문가의 자문을 받게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정책연구에 시민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게 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펼치고 있다. 이 지역 언론이 연구원에서 발간되는 연구 성과뿐만 아니라 시민에게 필요한 정책을 만들어 내기 위해 기울이고 있는 연구원의 노력에 대해 보다 자주 보도해 주기를 바란다.앞서 제시한 지역 언론 활성화를 위한 방안이나 연구원 구성원으로서의 개인적인 희망은 어느 한 개인의 기자나 언론사의 노력보다는 광주ㆍ전남 기자들과 언론사가 서로 힘을 합칠 때 가능할 것이다. 앞으로 우리 지역 언론이 지역의 여론을 선도하며, 사회의 어두운 곳을 밝혀주는 언론의 파수꾼으로서 역할을 보다 잘 할 수 있도록 하는 데 광주ㆍ전남기자협회가 주춧돌이 되기를 바란다.
광주전남기자협회 13-03-19 조회4466
저는 지금까지 변호사라는 업무의 범위 내에서만 우물 안 개구리처럼 지내온 것이 사실입니다. 제가 지난 2월1일부터 2년의 임기로 공보이사라는 직책을 맡게 되면서 법원과 검찰 등의 유관기관이나 광주ㆍ전남지역의 기자들과 교류하고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돼 기쁘게 생각합니다.법조인이라는 직업과 기자라는 직업이 얼핏 보면 전혀 공통점이 없는 다른 직업이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가장 중요한 점에서 법조인과 기자라는 직업은 공통점이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건에 있어서 실체적 진실이 무엇인지 관심을 갖고 그것이 개인이나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평가하고 탐구하는 점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저는 변호사로서 주변의 선후배들로부터 사건에 대한 선입견에서 벗어나 실체적 진실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당사자와 충실한 대화를 기반으로 한 꼼꼼한 기록 검토를 해야 한다는 점을 들어 왔습니다. 물론 이러한 다짐은 제 자신에게 늘 하는 당부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사건이 발생하면 주변에서 피상적으로 접하게 되는 내용으로 인해 누구나 어떤 편견이나 선입견이 부지불식간에 자리할 수 있어 스스로 성실하게 당사자와 대화하고 노력하지 않으면 사건의 실체에 접근하기 어렵게 되고 그에 따른 합리적인 결론에 이를 수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이러한 점은 기자의 취재현장에서도 강조돼야 할 점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기자는 사실이 무엇인지 취재를 통해 확인하는 과정에서 직접 발로 뛰는 성실함과 열정이 있었을 때 보다 근본적인 문제의 원인과 그에 대한 해결책도 모색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언론의 보도를 통해 이해당사자와 분쟁이 생기고 때로는 억울한 비난을 받는 일이 생기더라도 기자 스스로 취재현장에서 성실하고 충실하게 임한 결과물인 '팩트'가 존재한다면 다소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다르게 보이거나 평가되는 측면도 상쇄될 수 있을 것입니다.사회는 갈수록 복잡다기하고 이해관계는 첨예화돼 가고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자기 직분에 소명의식을 가지고 다른 영역의 사람들과 소통하고 공감하려는 노력이 무엇보다도 필요할 것입니다. 저희 광주지방변호사회 소속 회원들이나 광주ㆍ전남기자협회 소속 회원들이나 모두 각자 영역에서 치열한 소명의식과 성실성으로 우리 사회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 나가기를 충심으로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광주전남기자협회 13-03-19 조회50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