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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돌아본 나의 기자생활] 박용수 前 광주CBS 보도국장(광주시 비서실장)

작성자 : 광주전남기자협회 (211.198.190.***)

조회 : 4,371 / 등록일 : 16-03-10 15:39

 

<사진설명> (상) 우-부엉산 유골을 발굴한 뒤 구멍난 두개골을 들고

감식결과를 발표하는 이정빈 전 서울대 법의학과 교수

 

(하) 좌- 부엉산 앞에서 증언하는 땅꾼 김영길(왼쪽)씨와 녹음중인 박용수기자

(우)-박용수 기자(왼쪽)와 제보자 김영길(가운데)씨,

정상용 전 국회의원(오른쪽)이 유골 발굴 현장을 지켜보고 있다. 

 

 

전문가의 벽 뛰어 넘어라

 

 

   박용수 前광주CBS 보도국장(광주시 비서실장)

▲ 진도출신 목포고· 전남대·광주대언론대학원
▲ 1985년 광주CBS 입사
▲ 1997년 광주CBS 보도국장
▲ 1998~2005년 CBS 본사 문체부장·사회부장·경제부장·편집부국장
▲ 2006년 광주CBS 본부장
▲ 2010년CBS 상무 

 

 

1989년말 전두환 전대통령이 백담사에 유배되면서 5공 청산정국이 펼쳐졌다. 국회 5공
청문회와 5·18 청문회가 연일 전국에 생중계되고 5공 비리와 광주 학살의 진상이 속속 드러났다. 노무현 의원은 증언석의 전두환을 향해 명패를 던지며 포효해 청문회 스타로 떠올랐다.


1989년 1월. 기자로서 '살아남은 자의 부끄러움과 의무'로 5·18 진실 규명에 매달릴 때였다. 귀가 번쩍 트이는 제보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광주에서 화순가는 길목의 부엉산에서  5·18 직후 총구멍난 유골이 나뒹구는 것을 봤다는 제보였다.


김영길, 그의 이름 석자를 처음으로 공개한다. 5·18역사에 그의 이름을 '부엉산 5·18유골제보자'로 기록하고 싶다. 그가 아니었다면 5·18학살의 또 하나의 진실이 영원히 묻힐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땅꾼이었다. 당시 나이가 21살이니,  5·18 당시 12살. 그가 제보를 결심한 동기가 있었다. TV에서 5·18청문회 생중계를 시청하면서였다. 5·18직후 부엉산에서 봤던 유골이 5·18 진상 규명에 도움이 될 수도 있겠구나 싶어 제보를 결심한 것이다.


1980년 5월 말 그는 부엉산에 뱀잡으러 갔다가 머리에 총구멍이 난 주검을 발견했다. 부엉산 큰 암벽 아래 비탈이었다. "머리는 떨어져 나간 채 몸체만 나뒹굴고 있더라구요. 10여 미터 아래에 두개골이 따로 있었는데 총에 맞아 뒷통수에 구멍이 휑하게 나있습디다."

현장으로 달려갔다. 수습 중이던 임영호 기자가 동행했다. 40여분 오르니 응달진 곳에 돌무더기가 나타났다.  김영길은 10여 미터 낭떠러지 밑 평지를 지목했다. 체육복바지 헝겊 일부가 노출돼 있었다. 낙옆과 흙을 걷어 내자 형체가 드러났다. 암벽 위로 올라가니 5·18때 광주를 포위한 계엄군 경계 초소가 있었고 광주-화순간 국도가 내려다 보였다. 계엄군이 시내버스에 총을 난사해 선량한 시민과 학생들이 집단 학살당한 바로 그 도로 근처였다.


"이쪽으로 와 보세요! 이거 보세요." 그는 돌더미에서 돌 하나를 들어 올린 뒤 두개골을 꺼내 보여 줬다. 아이들 주먹 크기의 구멍이 뚫린 두개골이었다. 9년 전 땅꾼 형제가 돌더미에 숨겨놓은 5·18 희생자의 유골이 마침내 형체를 드러낸 것이다.


다음날 아침, CBS아침종합 뉴스에 "5·18때 머리에 총을 맞아 숨진 뒤 방치된 것으로 추정되는 유골이 광주 부엉산에서 발견됐다"는 소식을 전국 뉴스로 리포트했다. 특종의 기쁨보다 '살아 남은 자의 의무 가운데 하나'를 했다는 감격이 밀려왔다. 파장은 컸다. 깊은 산속에 버려진 5·18 유골 발견은 5·18청문회 정국의 핫 이슈로 부각됐다. 야당이 쟁점화하면서 며칠 뒤 부엉산에서 검찰의 지휘 아래 유골 발굴과 감식 작업이 이뤄졌다.


발굴작업과 감식은 서울대 법의학과 이정빈 교수가 맡았다. 국내 최고의 법의학 전문가였다. 확실한 목격자가 나타난 터라 감정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발굴 작업만하던 이교수가 입을 열었다. "두개골 뒷통수 구멍이 왜 생겼는지, 여러 원인이 있을 수 있어서 총탄같은 빠른 충격이 원인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총에 맞았을 가능성을 사실상 부인하는 것이었다. "시신의 체육복 바지에서 나온 고무줄인데요, 9년 된 고무줄이 쌩쌩한 거 봤습니까? 사망한지 한 3년? 길어야 5년 정도 된 걸로 보입니다."

 

"부엉산 유골 5·18 무관"  법의학자 감정 뒤집어
특종 기쁨보다 '살아 남은 자의 의무'했다는 감격
'국민 알권리'위해 전문영역 감시 책무 잊지 않길

 

 

실망감이 팽배했지만 누구도 전문가 소견을 반박할 수 없었다. 5·18단체 회원들은 "봤다는 사람이 있는데 무슨 소리냐"고 항의했다. 다음날 5·18행불자 가족들은 광주 공항까지 쫒아가 이 교수를 막고, '진실을 왜곡하지 말라' '희생자를 두 번 죽이지 말라'고 울부짖었다.


그러나 전문가라는 이름이 갖는 권위는 대단했다. 법의학 전문가의 감정결과로 부엉산유골은 언론의 관심에서도 사라졌다. 취재기자들은 대부분 종쳤다는 표정이었다. 검찰도 '괜히 한차례 소동을 폈다'는 반응이었다. 김씨의 증언은 전문가 이름 앞에 철저히 배척됐다. 내게도 깊고 무거운 침묵이 엄습했다.


"형님 내가 뭐라고 하던가요, 특종은 항상 위험하다니깐!" 후배 기자의 말은 더욱 아프게 폐부를 찔렀다. 땅꾼 김영길과 법의학 전문가 이정빈 교수, 누구의 말이 진실인가? 이대로접어도 되는 것인가? 뱀만 잡는 김씨가 거짓말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납득할 수 없는 감정 결과를 뒤집을 방법은 없는지 찾기 시작했다. 부엉산에서는 유골과 함께 남성 체육복 하의가 수거됐다. 주머니에는 담배 필터와 망가진 성냥갑이 들어 있었다. 담배필터의 길이는 22mm, 은박지는 절반은 미끈하고 절반은 요철상태였다. 추정컨대 희생자는 체육복을 입고 광주를 빠져나가다 사살됐고 22mm 필터담배를 피운 흡연가였다. 양담배 수입이 금지된 시절이라 그가 핀 담배는 100% 국산담배였다.


담배 필터와 은박지 제조시기를 알면 사망시기 추정이 가능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광주 연초제조창으로 달려갔다. 책임자에게 불이익이 돌아가지 않게 하겠다고 통사정 후1970년대 이후 담배표준 제작지침을 볼 수 있었다. 담배필터 길이와 은박지 모양이 언제 어떻게 달라졌는지 메모하며 확인 작업을 벌였다.


예상은 적중했다. 담배표준 제작 지침에 중요한 단서가 있었다. 대한민국 모든 담배가 22mm필터로 바뀐 것은 1979년 10월 이후였다. 시신에서 나온 은박지는1983년 3월 이후 생산이 중단된 사실도 확인됐다. 부엉산 유골의 주인공은 1979년 10월부터 1983년 3월사이에 사망했을 거라는 추정이 가능했다. 길어야 3년 됐다고 단언한 이 교수의 감정결과를 정면으로 뒤집는 것이었다.


"법의학 전문가가 5·18과 무관하다고 감정했던 부엉산 유골이 1979년에서 1983년사이에사망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광주CBS 취재팀이 전매청의 담배표준 제작지침을 분석한 결과, 시신에서 수거된 담배의 생산시기가 1979년10월에서 1983년 3월 사이로 밝혀졌습니다."


다음날 아침 7시30분, CBS 아침종합뉴스에 두 번째 특종리포트가 전국에 울려 퍼졌다.  첫 보도보다 파장이 더 컸다. 관계 기관의 확인 전화가 빗발쳤다. 정상용 의원은 기자회견을 갖고 CBS보도 내용을 제시하면서 5·18진상규명을 촉구하고 나섰다. 5·18단체들도 5·18 암매장의 진실을 밝힐 것을 촉구했다.


나는 전문가에 의해 묻힐 뻔 했던 5·18 암매장의 진실을 담배필터 추적으로 되살려 낸 것에 기자로서 큰 자부심을 느꼈다. 소중한 제보를 해주고 곤욕을 치른 김씨의 진실을 지켜낸 것이 가슴 뿌듯했다. 몇 년후 부엉산 유골은 여러 명의 법의학 전문가들에 의해 총알과같은 강력한 외부 충격에 생겨난 구멍이라는 감정 결과가 발표됐다. 후배기자들에게 '그래전문가 별 것 아니야'라고 외치고 싶다.

 

현장기자 시절, "기자가 굳이 전문가일 필요가 있나? 전문가들의 전화번호만 많이 알고 있으면 되지" 누군가 이런 얘기를 하면, 우리는 늘 "그거 참 명답이라"고 즐거워 하면서 기자생활을 했다. 그러나 이제는 전문가의 벽을 뛰어 넘지 않으면 안된다. 기자에겐 전문가들에게 주눅 들지않고, 전문영역도 감시할 막중한 책무가 있다. 국민의 알권리가 전문가의 벽앞에 무너져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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