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범기자의 문화 에세이-영원한 혁명의 아이콘 ‘서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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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광주전남기자협회
- 작성일 14-11-12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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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범기자의 문화 에세이] 우리들만의 추억
영원한 혁명의 아이콘 ‘서태지’
그가 다시 돌아왔다
마흔줄에 접어든 ‘아빠 서태지’낯설지만
90년대 학번엔 영원한 ‘혁명’이다
그해 겨울은 유난히도 추웠다. 잿빛 하늘 아래 칼바람이 매서웠다. 진눈깨비가 작렬하는 캠퍼스에서 91학번 새내기는 대학이라는 곳에 첫 발을 내디뎠다. 교정 한 켠에선 풍물소리가 쟁쟁거렸고, 학생회실이며 서클룸 앞에는 매직펜으로 꾹꾹 눌러쓴 대자보가 나부꼈다. 마르크스, 레닌을 스터디하며 사회주의 변혁을 꿈꿨던 사상학습. 눈물나는 가투의 기억. 그리고 어느 썰렁한 봄날. 국문과 여학생 한 명은 몸에 불을 지르고 생을 마감했다. 그해 오월은 어느해보다도 뜨거웠고, ‘분신정국’으로 점철된 그해 여름, 스무살 꽃같은 청춘들이 사회개조를 외치며 꽃잎처럼 스러져갔다.
몇 해전 출간됐던 소설 <사랑, 그 녀석>은 1990년대 학번의 사랑과 추억을 소재로 다뤘다.
90학번인 작가가 쓴 이 소설은 90학번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그야말로 90학번을 위한 작품이다. 특정 학번을 호출하는 방식의 글쓰기도 이채로웠지만, ‘90년대 초, 캠퍼스’라는 시공간을 배경으로 아기자기하게 펼쳐지는 연애담과 015B, 서태지와 아이들, ‘브룩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 ‘토탈 리콜’같은 문화적 아이콘들은 그때 그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한겨레신문 토요판에 연재되고 있는 SBS 김형민 PD의 <응답하라 1990> 시리즈도 90년대 초에 대학을 다닌 497세대에게 애틋한 ‘향수(鄕愁)’를 자극하고 있다. 필자인 김형민 PD 역시 90학번으로서 당시의 생활상과 문화적 코드, 개인적 에피소드를 구성진 글가락으로 풀어내고 있는데, 읽고 있노라면 동시대 학번들은 “맞아 맞아, 그땐 그랬지”를 연발하고야 말 것이다.
특히 29번째 꼭지였던 ‘삐삐의 시대’ 편은 휴대폰이 대중화되기 전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던 삐삐에 얽힌 일화들을 들려주고 있는데, 학창시절의 추억이 오버랩되며 박장대소 하며 읽었던 기억이 난다. 24편인 ‘한국영화의 부활’에서는 1990년 4월, 전남대학교에서 벌어졌던 영화 ‘파업전야’ 상영에 관한 이야기도 나온다. 당시 경찰은 영화상영을 저지하기 위해 포크레인에다 헬리콥터까지 동원했는데, 흡사 ‘군사작전’을 방불케할 정도였다. 그런 우여곡절 끝에 ‘파업전야’는 세상에 빛을 보게 됐고, 그때 고3이었던 나도 자율학습을 빠져나와 이 역사적이면서도 드라마틱한 장면을 지켜봤다.
그가 다시 돌아왔다. 90년대 초반, 혜성처럼 등장해 ‘문화대통령’까지 등극하며 시대를 풍
미했던 서태지. 그가 새 앨범을 발표하고 대중 곁으로 돌아왔다. 고졸 학력으로 당대 최고의 록그룹이었던 ‘시나위’ 멤버로 이름을 알리더니 이내 댄스그룹 ‘서태지와 아이들’을 결성해 세상을 뒤흔들었다.
90년대 초, 한국사회에서 서태지의 음악은 문화 대혁명이었고, 서태지라는 이름은 시대의 아이콘이 됐다. 서태지는 트로트와 발라드, 왜색풍의 댄스음악에 만족해야 했던 한국 대중음악계에 거대한 지각변동을 일으킨 ‘토네이도’와도 같은 존재였다.
앳된 20대의 이미지를 기억하는 우리들에게 마흔줄에 접어든 ‘아빠 서태지’는 다소 낯설다. 아빠가 된 서태지는 더 이상 ‘교실 이데아’나 ‘컴백홈’, ‘발해를 꿈꾸며’ 같은 혁명적이면서도 파워풀한 노래를 부르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90년대 학번, 더 정확히 말하면 90년대 초반 학번들에게 서태지의 이름은 영원한 ‘혁명의 아이콘’, ‘우리들만의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 편집위원(BBS광주불교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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