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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는 결코 혼자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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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광주전남기자협회
  • 작성일 13-05-24 20:44
  • 조회수 5,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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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주간인 지난 20일 광주에서 규모는 작았지만 울림은 큰 행사가 열렸다. '오월 광주'가 가쁘게 관통하는 한 복판에서 기자의 날 토론회가 진행된 것이다. 올해는 수구보수세력에 의해 광주항쟁을 폄훼왜곡하는 행위가 노골화하고 조직적으로 이뤄지는 상황인지라 이번 행사가 갖는 의미는 더욱 컸다. 바로 80년 당시 현장을 지켜봤고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기자들이 한자리에 모였기 때문이다.

 사실, 현직기자들에게 '기자의 날'은 다소 생소한 단어일 수 있다. 기념일로 지정된 것도 아니고 반듯한 의례도 치른 적이 없었던 탓이다. 하지만 그날은 분명히 있으며, 그것도 80년 오월광주와 맞닿아 있다.

 광주시민들의 붉은 피가 금남로를 적셨던 19805, 신군부의 사전기사 검열 때문에 광주의 진실을 보도하지 못했던 기자들은 20일부터 제작거부 투쟁에 돌입했다. 그 결과는 '해직'이라는 비수가 되어 그들에게 날아들었다. 이후 광주를 군홧발로 짓밟고 정권을 찬탈한 군부는 1000여명의 기자들의 손에서 펜을 빼앗아 버렸다. '기자의 날'은 이처럼 제작 거부 투쟁을 시작한 520일을 기념해 한국기자협회가 지난 2006년 제정했다.

 이러한 아픈 과거를 가슴속에 품은 해직기자들은 토론회를 통해 다양한 의견을 표출했다. 80년 광주항쟁 기간 전국적인 언론인 투쟁에 대한 인식 제고를 위해 언론인 투쟁 관련 백서를 만들자는 의견도 제시됐다. 또 당시 국내언론이 정권의 나팔수 노릇만 한 것이 아니라 광주의 참상을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을 법률역사사회문화적으로 공론화해 더 늦기 전에 후대에 떳떳해지고 싶다는 의견도 나왔다. 물론 광주시민들은 피 흘리며 죽어가는데도 '진상' 하나 알리지 못하고 되레 '폭도들의 만행'으로 몰아간데 대한 반성도 뒤따랐다.

 만찬장에서는 보다 진솔한 의견이 오갔다. 신군부의 통제 속에 외신을 통해 광주의 참상을 알아야 했던 자괴감에서부터 어떻게든 광주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사비를 들여 기자를 광주로 파견했다는 회고담도 나왔다. 왜곡보도 내용을 놓고 벌인 선배들과의 마찰, 생각을 달리하는 동료들과의 갈등 상황 등도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다들 60을 훌쩍 넘긴 해직 언론인들은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그날을 증언했다.

 다음날, 국립518민주묘지를 참배하면서도 그들은 선배 언론인을 먼저 찾았다. 윤상원박관현 열사 묘를 안내 받은데 이어 바로 송건호리영희 선생의 묘소를 찾아 묵념했다. 그들의 묘비를 어루만지고 묘비명을 읽으며 선배 언론인의 정신을 기렸다.

 80년 당시 광주시민들은 외로웠다. 목숨을 건 항쟁에 응원군이 없었다. 몽땅 광주시민들이 홀로 감당해야 할 짐이었다. 하지만 광주는 혼자만이 아니었다. 광주의 진실을 알고, 그 진실을 드러내지 못하게 되자 붓을 꺾어버린 수많은 언론인이 광주와 운명을 함께 한 것이다.

 이틀 동안 서울에서 오신 20여분의 해직언론인들은 '젊은 기자'에게 큰 위안을 주고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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