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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돌아 본 나의 기자생활 - 박연재 변호사(전 KBS목포방송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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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광주전남기자협회
  • 작성일 14-04-10 15:17
  • 조회수 5,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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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광주전남기자협회장 시절 중국 산둥성기자협회의 초청으로 중국을 방문했다.
KBS목포방송국장으로 재직할 때 아름다운가게 목포지부에서

일일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박연재 변호사는
광주제일고, 전남대 법대 졸업
1981년 KBS 입사(기자)
KBS 광주방송총국 취재부장·보도국장
KBS 목포방송국장
49회 사법시험 합격·41기 사법연수원 수료
2012년 변호사 개업
전 한국기자협회 광주·전남지부장
광주 서중·일고 총동창회 상임이사
전남대 총동문회 부회장

 

 

부럽다, 이 순간 기자라는 사실이

 

 

 

  가정을 두고 백수로 견디다 못해 우연히 기자로 입사한 지 햇수로 30년, 언론계 정년을 하고 법조계로 나선 지는 3년째다. 세월이 흘러도 9시뉴스 시그널 음을 듣는 순간 위장이 조여드는 듯한 조건반사가 느껴지는 걸 보면, 생래적 기자는 못 되더라도 언저리에 아직도 기자라는 데자뷰가 스멀거리고, 기자생활 중 기억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일도 있었지만, 그래도 타사보다 앞서 취재, 보도를 하려고 노력했던 일들은 나의 소중한 추억이다.


  입사 초년으로 광주서부경찰서를 출입할 때는 광주항쟁 2주년으로서 종교계를 비롯해 전반적인 사회분위기가 무척 어수선했다. 어느 날 출입처에 가니 간부 모씨가 업무보고용 미농지를 가만히 내보이는데, K경찰국을 폭파하겠다는 정보였다.


  당시 광주항쟁 무력진압에 대한 국민적 울분, 저항, 반감이 심했고, 아직도 도심 하수구에 버려진 총기류가 발견되던 등의 사정을 감안하면 이는 단순한 협박전화 수준이 아니라고 판단돼서 데스크에 보고하였다.


  엄혹한 시국이라 기사화까지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문제는 이 정보가 경로를 통해 K경찰국에 비상을 걸게 하는 데 그치지 않고, 경찰이 그 정보원 등을 캐려고 필자를 찾아 나선 것이다. 필자는 밤에 세면도구를 챙겨 광주 아세아극장 뒷편 여관으로 피신해 사태를 관망했다. 다행히 며칠 지나 사태가 수습되었는지 별일 없이 출근해 다시 출입처에 나가게 되었는데, 모씨가 정문 앞에서 눈 빠지게 기다리다가 혹시라도 자신이 그런 정보를 줬다는 사실을 발설하지 않도록 신신당부했다.

 

제보자 색출 경찰 피해 여관 신세


  훨씬 훗날 한 번은 광주시민회관에서 열리는 3·1절 기념식 취재에 나섰다. 주최 측 모 직원이 귀뜸하기를, 구청장석은 중앙 쪽에, 경찰서장석은 그 옆 갓쪽으로 정한 데 불만을 품은 서장 몇 명이 나가버렸다는 것이다. 필자는 카메라기자에게 그 비워진 자리를 자연스럽게 촬영토록 당부하고 살피니, 어느 서장은 출입구 쪽에 우두커니 서 있고 알만한 관내 서장도 자리에 없음이 확인되었다.


  영상까지 확보되었으니 보도는 시간문제, 그러나 이런 뉴스는 공휴일 지역에만 방송되면 유무형의 압력으로 두 번 다시 전국방송을 타기 힘들다는 점을 익히 알고 있었기에 데스크와 협의해 서울송고 시각을 늦춰 저녁 8시대에 전국으로 터뜨렸다(9시뉴스에서는  없던 것으로 기억된다).


  당시는 야당 때 박해를 받은 경험이 있던 YS집권 초기 군기를 잡던 시절이라 마침 최고위층이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기 위한 3·1절 기념식장에서 일부 경찰서장들이 자리에 불만을 품고 식장을 박차고 나갔다’는 요지의 뉴스를 직접 시청하고 격앙하였다는 후문이다.
그날 밤 감사팀이 헬기로 날아왔고, 경찰수뇌는 오보라며 항의방문하고, 총국장은 필자를 불러다 ‘박 형, 마음 단단히 먹고….’라고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예고하는데, 덩치 좋은 경찰 서너 명까지 회사에 찾아와 필자를 찾아내라니 대략 난감하였다.


  이전에도 실세 A장관, B도지사, C모 재벌총수의 각 부인 등이 연말 여수해경을 위문한다면서 보성 쪽에서 여수에 도착할 때까지, 여수해경서에 위문품을 전달하고 돌산 향일암까지 경찰 에스코트를 각 받은 사실을 제보받고 이를 전국에 보도한 사실이 있다. 그때도 해경청에서 헬기를 띄워 감사에 나선 일이 있었다. 당국은 여수 돌산 초소위문에 나선 것이라고 항변하였으나 필자가 이들의 행로를 이미 확인한 상태여서인지 더 이상 문제삼지 않았다. 시끄러운 기자라고 여겼겠지만.


  어느 해 7월, 여수 남면 소리도 부근 해상에서 유조선 씨프린스 호 좌초사고가 발생한 사실을 한낮의 더위가 식혀지려는 퇴근 무렵에 제보받아 신속히 처리하였으나 상은커녕 ‘해경담당’이라는 그놈의 출입처 때문에 사고가 수습될 때까지 취재, 보도로 상당기간 심신이 피곤하였다.


  이런 사건에 거명된 장관, 도지사, 재벌총수, D서장, E해경서장 등이 묘하게 일찍 고인이 됐고, 반면에 이런 보도로 공로가 인정된 사실도 웬일인지 없었다.

 

생애 첫 특종상 주인공은 ‘신창원’


  아니 딱 한번, 탈옥한 무기수 신창원이 순천에서 붙잡혔다는 보도로 내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 특종상을 받게 되었는데, 그때도 막 퇴근 무렵 외부 제보 덕분이었으니, 신창원이 출소하면 고맙다 말을 할까….


  하여튼 1년만 하려고 뛰어들었다가 내 젊은 시절을 바친 기자생활이 정년까지 연장된 것은 오로지 주위의 도움 때문이었다 할 것이다.


  이제 누군가가 다시 태어나도 기자를 할 건가라고 필자에게 묻는다면, 그건 부질없고 사치스런 질문일 것이다. 불가능한 상황을 전제한 것으로서 적어도 필자는 현세건 내세건 다시 태어날 수는 없다고 믿는 쪽이기 때문이다. 그저 후배 여러분들이 이 순간 기자라는 사실이 부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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