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여행지에서 기사를 마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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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광주전남기자협회
- 작성일 19-03-14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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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여행지에서 기사를 마감하다
다낭서 신년특집 메우느라 이틀 날려…
다행히 장모님과 같이 떠나 아내 평온

늦은 나이에 결혼을 했다. 아내는 7살 어리다. 잘해주는 것은 기본이요, 떠받들고 살아야 하건만 9월에 결혼했는데 신혼여행은 12월로 예정됐다. 바빠서였다.
더욱이 신혼여행 계획조차 아내가 도맡았다. 내가 한 것이라고 돈을 통장에 입금하는 것 뿐이었다.
그런데 아내가 일처리를 너무 잘한다. 비행기, 호텔 예약, 현지 일정까지. 그냥 아내만 믿고 가는 것이었다.
여행지를 다낭으로 고른 것은 나 때문이었다. 5시간 이상 비행하지 말 것과 동북아시아권이 아닐 것 등의 내 조건에 맞추느라 거기를 택한 것이었다.
그런데 신혼여행이 하루하루 다가오는데 마음이 무겁기 시작했다.
떠나는 날짜가 전 세계 여행의 극성수기인 12월25일 전후다. 일단 무조건 비용이 두배라는 이야기다. 그래도 그것은 이미 각오한 바였으나 문제는 신년특집이었다. 나는 신년특집 중 회사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기획인 ‘공프로젝트’ 담당이었다.
사실 원래 이 특집은 내가 쓸 것이 아니었다. 데스크들이 쓰는 기획이었으니까.
결혼 당시만 해도 나는 정치부 차장이었다. 차장이 막을 신년특집 쯤이야 뻔하다. 당연히 미리 막을 준비가 있었기에 연말을 골랐다.
그런데 결혼 한 달 후 뜬금없이 사회부장으로 자리가 바뀌었다.
데스크가 연말연시 그 바쁜 시간에 일주일이나 자리를 비운다는게 애시당초 말이 안되는 일이다. 심지어 공프로젝트 1월호 주인공은 함세웅 신부였다. 대충 쓸 기획도 아니거니와, 인터뷰와 자료 추출하는데만 꼬박 하루가 걸린다. 양이 너무 많아서였다.
더욱이 어찌나 사회부의 일은 날마다 팡팡 터지는지. 초보 데스크의 고군분투에도 불구하고 신혼여행을 떠나기 직전까지 공프로젝트의 ‘공’자도 쓰지 못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칼럼 마감일까지 신혼여행기간에 있었다. 영락없이 현지에서 신부 혼자 팽겨쳐 두고 마감할 판이다.
그래서 아내에게 권했다.
“장모님하고 자주 해외여행 다녔다면서. 이번에 자기만 나가면 섭섭해 하지 않으실까? 같이 모시고 나가지 뭐. 장인어르신도 같이 말야. 우리 둘이야 언제라도 나갈수 있으니.”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아내의 답을 기다렸다. 그런 사람은 아니지만 혹시나 허니문의 달달함 뭐 그런 것을 기대하는 것은 아니었는지 불안한 마음으로 말이다.
아내는 “어? 그래도 돼?”라고 물었다. 역시나. 낭만은 지구저편에 던져 놓은, 그래서 내 반 쪽 다운 답이었다.
“당연하지!”
그렇게 우리의 신혼여행은 장모님과 같이 떠나는 여행으로 바뀌었다. 장인어른은 “우리가 거길 왜 가?”라며 장모님을 말리셨지만, 아내의 강력한 푸쉬에 백기를 드셨다.
어느 정도 상황이 정리되자, 나는 “근데 말야, 요즘 일이 너무 많아서… 아무래도 현지에서 기사를 좀 마감해야 할 것 같아”라고 아주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내는 쿨하게 “인천공항 면세점 들릴 건데…”라고 나를 쳐다봤다.
곧바로 정중하게 “소인의 카드를 부디 사용해 주시옵소서. 할부만 해주신다면야 XXX까지는 감당하겠나이다”라고 간청했다.
그렇게 떠난 다낭 신혼여행은 솔직히 대 만족이었다. 비행기가 도착한 즉시 호텔로 갔는데 무려 스위트룸이다. 그런데 가격은 하루 20만원대다. (이 여자 봐라) 더군다나 아내는 거의 가이드 뺨칠 만큼 코스를 짜 놨다. 음식점이고 관광지고 아내가 가자는 데로 가면 됐다. 때에 따라서는 나에게 자유 시간을 주고 어머님과 돌아다녔다. 사실 기사 마감하는 이틀을 제외하고 나는 자고 싶으면 자고 먹고 싶으면 먹었다. 음식도 아내가 알아서 주문해주고, 관광지 티켓 구매도 아내가 다 했다. 실제로 다낭에서 나는 영어 한마디 쓸 이유가 없었다. 어머니도 어찌나 신이 나셨는지. 이쯤 되면 두 사람의 여행에 내가 끼어든 것 같을 정도였다.
그런데 재밌었다. 장모님과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많아 내가 모르는 아내의 모습도 알게 됐다. 나는 그녀가 한때 미대 진학을 준비했다는 것(그림은 본적이 없다)과 러시아에 다녀온 뒤로는 늘 러시아인과 결혼하겠다고 말하고 다녔다는 것(그런데 왜 나를?)을 알게 됐다.
또 그녀의 어린 시절 이야기와 성장했을 때의 이야기,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대해서도 들었다. 그러다보니 그녀가 더욱 입체적으로 다가왔다.
신혼여행기는 그다지 쓸 것이 없다. 남들 보는 것 다 봤고, 먹을 것 먹었다. 잠시나마 기자 직분에서 벗어난 것도 즐거웠다. 몸이 굳은 나를 위해 여행 내내 마사지를 예약한 것도 좋았다. 그정도는 누구나 다 경험하는 것이다.
허나 지면에 하지 못할 이야기는 너무 많다. 예를 들어 아내의 옆모습이 무척이나 예쁘다는 것(정면은 말하지 않겠다)과 아내와 장모님의 투샷이 참 좋았다는 것 말이다.
사실 두사람이 같이 찍은 사진 한 장으로도 나는 충분히 이번 신혼여행에 만족했다. 아내의 얼굴이 무척이나 평화롭고 행복해 보였으니 말이다.
/노병하 전남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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