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전남기자협회 편집위원 제주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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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광주전남기자협회
- 작성일 20-03-17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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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기자협회 편집위원 제주연수
‘정명되지 못한’ 4·3을 되돌아보다
<사진설명> 광주전남기자협회 편집위원들이 제주시 4·3평화공원 위령광장에서
4·3사건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고 있다.
어떤 이는 폭동이라고 한다. 혹자는 항쟁이라고 한다. 한 마을에서 서로 죽고 죽이는 이웃상잔의 비극이 자행됐다. 산 자와 죽은 자, 가해자와 피해자는 얽히고설켜 있다. 사람들을 그때의 참상을 입 밖에 내지 못했다. 공식적으로 부를 명칭도 찾지 못했다. 그래서 내놓은 명칭이 ‘사건’이다. 정명(定名)되지 못한 역사, 제주 4·3 얘기다.
제41대 광주전남기자협회 편집위원들은 제주 4·3사건 72주년을 앞두고 지난 1월 31일부터 2월 2일까지 제주도 연수를 떠났다. KBC 정지용 기자를 비롯해 편집위원 등 11명이 참가했다.
1947년 3·1절 발포사건과 1948년 4월 3일 무장봉기로 촉발된 4·3은 무장대와 토벌대 간의 무력 충돌과 토벌대의 진압 과정에서 2만5000∼3만여명(추산치)의 인명 피해를 가져온 근현대사의 최대 비극이다. 가옥 4만여 채가 소실됐고 중산간 지역의 상당수 마을은 폐허로 변했다. 1954년 9월21일 한라산 금족령이 해제되면서 4·3은 끝이 났지만 마을공동체·공공시설 파괴 등 물적 피해와 유가족들에게 대물림된 연좌제의 족쇄, 고문후유증과 레드 콤플렉스 등 물질적·정신적 피해는 치유되지 못했다.
4·3의 역사를 찾아가는 첫 관문인 4·3평화공원은 72년 전 역사의 현장을 고스란히 간직했다. 기념관 한 가운데 있는 ‘백비’(비문 없는 비석)는 이데올로기로 점철된 근현대사의 참상을 여실히 보여줬다.
2년간 협회보 제작에 힘쓴 편집위원들을 격려하고 역사의 현장을 찾아 떠나는 답사 형식의 연수, 술과 대화와 웃음과 여유가 함께 했으나, 가슴 속 한 편엔 먹먹함이 남았다.
/한산 뉴스1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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