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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돌아 본 나의 기자생활-김우성 전남농업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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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광주전남기자협회
  • 작성일 14-03-14 20:17
  • 조회수 7,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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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힐뻔한 신창동유적 지켜내
선배들에 끌려다니며 ‘술자리특종’ 교육
자기계발 소홀 후회 막급 “전문가가 되라”


 ‘나의 기자 시절…’ 이라는 주제의 원고 청탁, 수차 거절하다 수락하고 말았다. 후회스럽다. 나보다 훌륭한 선배, 동료 언론인들이 많은데다 내가 과연 후배들에게 조언할 만큼 열심히 살아왔는가를 생각할 때 자신할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후회해본들 소용없는 일, 후배들에게 다소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심정이다.
 28년 언론 생활을 회고해보니 만감이 교차한다. 당시 광주·전남에서 유일했던 광주일보 수습기자로, 언론계에 첫발을 디딘 일에서 정의를 쫓던 젊은 시절과 척박해진 언론풍토를 한탄하며 소주잔을 기울이던 일까지….
 1986년 1월 4일, 기자 생활 시작일이다. 편집국에 들어섰지만 누구 하나 거들떠보지 않았다. 동기생 5명은 이것도 교육이려니 하며 적응해갔다. 1개월쯤 지나 언론연구원 교육 입소 통보가 있고서야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후 우리들의 밤은 괴로움의 연속이었다. 바로 위 선배들의 환영식을 필두로 부서별 환영식 등 ‘술 수습’이 계속됐다. 매일 술에 시달리고 새벽엔 사건을 체크한 뒤 출근해야 하니 죽을 맛이었다. 그러나 선배들은 ‘술 먹는 저녁, 일하는 아침’을 강조하며 ‘술 수습’을 거르는 날이 없었다. ‘술자리 특종’ 등으로 음주의 중요성을 미화할 뿐이었다.
 수습을 뗀 뒤 사회부 사건기자를 비롯해 정치, 경제, 문화, 체육 등 전 분야 출입처를 섭렵했다. 특히 사건기자로 겪은 애환은 잊을 수가 없다.
 한 번은 이른 아침, 경찰서를 들어서는데 형사계장 짚차가 대기 중이었다. 운전병에게 방향만 물어본 뒤 파출소에 전화해 형사 행세를 하며 사건내용을 파악, 현장으로 달려가 경찰복장 강도사건을 특종보도했던 일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또 수습기자와 형사계로 들어서는데 타사 기자들이 앉아있고 형사주임은 무전기로 양림PB를 외쳐댔다. 나는 양림파출소로 달렸다. 아니나 다를까 형사과장을 비롯해 형사들이 모여 있었다. 모두 깜짝 놀랐다. 형사과장은 날치기범 검거작전 중이라고 실토하며 혹 놓치더라도 눈감아 달라고 했다. 경찰서로 돌아오는데 수습기자가 타사 기자와 술을 마시러 가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 감이 없어서야 어떻게 하겠느냐”며 호통을 쳤다.
 이외에 장학사가 교사들과 도박판을 벌인 사건 기사를 막으려는 선배와 다퉜던 일, 부당한 취재지시에 “왜 내가 이런 악역을 맡아야 하느냐”고 항의했던 일 등. 모든 게 어제 일인 듯 뇌리를 스친다.
 보람도 많다.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체육부기자로 대한민국 4강 신화를 현장 취재했다. 또 그 해 4월에는 ‘우주시대, 선진모델을 찾아’라는 기획물이 언론재단 해외취재 지원대상에 선정돼 미국 케네디우주센터 등을 취재한 뒤 시리즈로 보도했다. 이 기획물로 광주전남기자협회상과 고흥군 공로상을 받기도 했다. 1998년에는 ‘바다로 나가자’ 시리즈로 한국신문방송클럽 언론대상을 수상했다.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것은 1992년 도로부지에 편입돼 묻힐뻔한 광주 신창동 유적(국가사적 375호 지정)을 지켜낸 일이다. 조현종 광주박물관 학예연구사(현 광주박물관장)의 제보로 취재 보도, 개발을 막아낸 일은 지금도 보람으로 남는다.
 이제 전남농업박물관장으로 벌써 옛일이 돼버린 언론 생활을 되돌아본다. 매너리즘에 빠질 때도 있었지만 빛과 소금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 쉼없이 달려왔다고 자부한다. 애초 어느 한 사람의 소유물일 수 없는 ‘진실’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언론의 길을 걷기로 해서 일까. 후회스런 일도 없지 않다.
 눈앞에 닥친 일에 충실한다는 핑계로 자기계발에 소홀한 점 부인할 수 없다. 후배 교육때면 스스로 강조했건만 정작 본인은 왜 실행하지 않았을까 후회 막급하다. 후배들에게 감히 당부하고 싶다.
 우선 외국어 하나쯤은 유창하게 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또 어느 한 분야에 전문가가 될 수 있도록 부단한 노력을 해야 하겠다. 그리고 꿈을 실현할 수 있는 인맥관리에도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지금 우리 사무실에만도 자격증 취득과 외국어 능력 향상을 위해 노력하는 직원들이 많다. 우리 기자들도 자기계발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였으면 좋겠다.
 양질의 기사발굴을 위해 노력하는 것 또한 후배들이 추구해야 할 중요한 덕목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힘없는 사람을 두려워하고, 힘있는 사람이 두려워하는 그런 뉴스를 만들겠다’고 한 JTBC 앵커 손석희의 취임 일성을 가슴에 새기면 어떨까 싶다.



김우성은
-전남고, 전남대 졸업
-1986년 1월 광주일보 수습기자 입사
-정치부장, 편집부국장, 문화홍보국장, 논설실장 역임.
-2013년 4월∼ 전라남도농업박물관장
-재광진도군향우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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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문화부 기자로 지역 문화재 전반을 취재할 때의 모습.(카톡으로 보냄) 
-2002년 4월 최현배 기자와 함께 미국 플로리다주 케네디우주센터를 취재하고 있다.(최현배 기자와 우주조립동앞에서 찍은 사진-카톡 참조해 최기자한테 원본 부탁할 것)
-지난해 박물관을 방문한 박준영 전남지사와 야외전시장을 둘러보고 있다. 
-지난 2월 15일 박물관 주관 정월대보름 행사에서 고사를 지내고 있다.
- 〃 달집에 점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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