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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하순 시베리아行 '무모한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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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광주전남기자협회
  • 작성일 16-04-12 15:38
  • 조회수 6,7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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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이르쿠츠크 주 바이칼 호수 일대는 수만년 전부터 많은 민족이 문화를 꽃피운 터전이다.

번영과 안녕을 기원하는 오색천이 걸려 있는 소나무와 브럇트 몽골 민족이 신성하게 여기는

바이칼 호수 불암바위 전경(상). / 최현배 광주일보 기자



12월 하순 시베리아行 '무모한 도전'



오광록 광주일보 기자



'촌놈' 경악케 한 영하 44도 한파 상상초월
가방 가득 챙겨간 핫팩·팩소주 부질없어


무모한 도전이었다. 12월 하순에 시베리아에 간다는 것은. 2015년 12월 21일~30일 광주일보 취재진은 그렇게 광야에 섰다. 2012년에 시작한 기획물 '아시아 문화 원류를 찾아서'의 브럇트·몽골 편을 위해 사진부 최현배 부장과 함께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개인적으로 초기 기획에 참여했기
에 꼭 쓰고 싶었던 연재물이었는데 그동안 인연이 닿지 않아 더욱 몸이 달아올랐다.


믿을 건 가방 가득 넣은 핫팩과 팩소주. 하지만 울란바토르 칭기즈칸 공항에 도착했을 때 그 믿음은 부질없음을 몸으로 느꼈다. 러시아행 비행기를 기다리며 잠깐 나간 공항 건물 밖에서는 평생 경험해 보지 못한 한파가  '씨익' 웃으며 '촌놈'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렇게 몽골~러시아 이르쿠츠크~바이칼 알혼섬~브럇트공화국~몽골로 이어지는 강행군이 시작됐다. 비행기와 배, 기차, 국경버스를 갈아타야 했고 통역과 가이드없이 국경을 넘나드는 이동 과정에서 어려움도 컸다.


러시아의 변두리인 이르쿠츠크의 추위는 대단했다. 벌판에서는 발가락이 먼저 얼었다. 옛 부족은 추위를 견디기 위해 사슴 가죽과 털로 신을 만들어 신었다. 지금도 이곳에서 가장 따뜻하고, 비싼 신발은 사슴 가죽으로 만든 부츠다. 숙소도 추워 제대로 잠들지 못하는 날도 있었다.


바이칼은 모든 슬픔을 잠시 잊을 수 있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혼자여도 충분히 사랑받고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은 감동을 줬다. 겨울이라 관광객도 없었고, 호수만이 홀로 얼어붙고 있었다. 물은 너무도 투명했고, 이곳이 한민족의 시원이라는 생각에 가슴은 벅차 올랐다.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이곳에서 사진을 찍으며 살고 있는 프랑스 남자는 부러움을 주기에 충분할 정도로 행복해보였다.


브럇트인이 남긴 문화 흔적도 풍부해 취재는 비교적 수월했다. 박물관과 샤먼의 집 등을 오가며 추위와 싸워야 했지만 혹독한 자연이 안겨준 감동은 컸다. 샤먼의 울림도 컸다. 모든 생명체와 사물에 영혼이 깃들고 삶에 감사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샤머니즘에 담겨 있었다.


무엇보다도 끝없이 펼쳐지는 시베리아의 자작나무는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기에 충분한 떨림을 줬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는 러시아 사내들의 술판 탓에 어수선했고, 국경을 넘는 일은 끔찍했다. 정해진 역에서 내리지 않으면 시베리아 어느 끝자락에 버려질까 걱정도 했지만 4인실 침대칸에 함께 탄 러시아 여성의 도움으로 새벽녘 브럇트자치공화국 울란우데에 도착할 수 있었다.


브럇트공화국에서 몽골로 이어지는 국경 버스는 죽음이었다. 겨울 탓도 있지만 13시간 가량 좁은버스 안에 갇혀 있었고, 검문과 짐 수색이 이어지는 통에 제대로 쉬지도 못했다.

강대국 틈바구니 속 작은 나라 몽골의 슬픔
역경에도 굴하지 않는 정신·문화의 힘 확인


몽골은 슬픈 곳이었다. 바이칼의 감동이 큰 탓도 있겠지만 러시아와 중국 등 강대국에 끼어 살아가는 작은 나라의 슬픔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또 한국에서 돈을 벌어야 하는 이주 노동자들의 흔적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몽골의 문화는 많은 곳에서 퇴색되고 있었다. 중국과 한국이 풍긴 자본의 냄새가 게르 안에 가득했다.


이번 취재를 통해 느낀 것 하나. 문화는 결코 억지가 아니다. 땅과 나라와 몸을 빼앗더라도 문화는 가져갈 수도 지울 수도 없다. 러시아와 몽골의 지배를 받고 지금도 러시아의 변방으로 살아가는 브럇트의 경험이 이를 증명한다. 한민족이 일제의 말살 정책에도 굴하지 않았듯, 브럇트도 자신의정신과 문화를 지켜왔다.


그러니 자본이 아무리 흔든다고 해도 쫄지 말자. 자연과 사람이 함께 어우러져 삶의 의미를 찾던 우리 문화의 뿌리는 온전할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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