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억 속 5·18] 윤장현 광주시장-의사 가운 입고 맞은 참상에 '분노와 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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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광주전남기자협회
- 작성일 16-05-10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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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망월동 5·18구묘역을 참배하고 있는 윤장현 광주시장
[내 기억 속 5·18] 윤장현 광주시장
의사 가운 입고 맞은 참상에 '분노와 충격'
보장된 삶 포기하고 시민운동 뛰어든 계기
권력 부조리·반인권 행위 투쟁…인생의 자양분
'저항→참여→연대' 사람 살만한 공동체 만든 힘
목숨 걸고 광주를 기록한 故힌츠펜터 기자 존경
상처는 약과 시간이 치유하는 것이지만, 그것을 상처 이전으로 돌릴 수 없는 것은 흉이 남기 때문이다. 육체의 상처뿐 아니라 정신적 상처에도 흉은 남는다. 흉은 흔적으로, 또는 기억으로 오랫동안 우리를 지배한다. 그것이 특히나 정신적인 경우에는 세월이 흘러도 아물지 않고 덧나는 경우가 많다. 5월은 그런 것이고, 그래서 누구도 5월로부터 온전히 치유됐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1980년 5월의 육체적 상처는 어느 정도 아물었는지 모르지만, 그것이 남긴 정신적 상처는 36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진행형일 수 밖에 없다. 늘 그것이 걱정이었고, 그날 이후 나는 5월의 환자인 동시에 5월을 치유하지 않으면 안될 5월의 의사로서의 삶을 숙명으로 알고 살았다.
서른한 살, 조대병원 주치의로서 나는 하얀 가운을 입고 5·18을 맞았다. 병원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시민들의 행렬, 총상 자상을 입고 피 흘리며 죽어 나가는 환자들을 치료하면서 나는 분노했고, 말할 수 없이 큰 충격을 받았다. 그것은 내게 의사로서 보장된 삶을 포기하게 했고, 몇 년 뒤 시민운동에 뛰어든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나는 YMCA를 기점으로 가톨릭 교계와 연대하고 동참하면서 5월과 인권과 평화 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그 중에 5월의 진상을 알리기 위해 기획한 전시회는 잊을 수 없다. 1980년 당시 사진이나 기록을 갖고 있는 언론인, 시민들로부터 자료를 받아 가톨릭센터에서 전시회를 열었는데, 지금이야 별 어렵지 않은 것처럼 생각이 들겠지만, 1987년 4월 당시에는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었다.
4·13 호헌조치 직후 5월의 참상을 기록한 전시회는 광주시민과 국민들의 공분을 불러 일으켰고, 거기서 결집된 힘이 5월을 거쳐, 6월 항쟁의 기폭제가 됐다고 나는 확신한다. 이철규 의문사 사건 당시 시민자문위원으로 단순 익사로 결론지었던 국과수와 검찰을 상대로 싸운 일들, 천주교 정평 부위원장을 맡아 수많은 권력의 부조리와 반인권행위에 대해 투쟁한 일들은 내가 시대 정신을 외면하지 않고 살아왔다고 생각하는 내 삶의 자양분이 됐다.
1993년 문민정부의 출현은 표면적으로 5월의 승리라고 자부해도 좋을 일이다. 5·18이 기념일이 됐고, 성역화, 책임자 처벌, 보상과 배상 등 5원칙이 부족하나마 이뤄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나는 기쁨보다는 다른 감정, '왜 만세를 부른 손이 내려오지 않을까'라고 생각되는 의문에 휩싸였다. 내 고민은 '5월이 이제는 과거완료형이 되고, 박제화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퍼뜩 '광주가 아닌 타국의 민주화 상황은 어떠한가?', 생각은 거기에 미쳤다. 이른바 '제3국'의 역사라는 것이 수천년의 절대왕정-수백년의 식민통치(한국 36년, 인도 250년, 스리랑카 450년, 동티모르 470년 등)–2차 대전 같은 전쟁과 독립과 내전, 그리고 군부독재의 지배를 받는, 수탈과 억압의 악순환 고리로 이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그때, 필리핀의 2월 혁명, 태국의 5월 학생운동, 북경의 천안문 사태 등이 광주의 5월로부터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확인했고, 가장 먼저 군부독재를 깨뜨린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은 '연대(solidarity)'라는 현실을 깨달았다. 그것은 5월의 출구였고, 새로운 5월의 시작이었다. 나는 아시아인권위원회 이사를 맡으면서 광주의 5월 정신을 원동력 삼아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인권과 평화에 관한 국제적 연대의 틀을 갖추기 위해 노력했다.
나는 긴 세월 5월의 끈을 놓지 않고 살아왔고 지금도 그렇다고 자부한다. 내가 향락하고 일탈하지 않은 것은 5월 덕분이다. 그런 점에서 5월은 빚이고, 축복이다. 나는 5월이 다시 진화하기를 소망한다. 지난해 U대회를 치르면서 나는 광주정신을 재확인했다. 메르스의 비상상황에서 시민들이 보여준 의식은 놀라운 것이었다. 나는 거기서 '저항'의 힘이 '참여'의 에너지로 바뀌어 있는 것을 보았다. 저항에서 참여로, 참여에서 연대로, 우리 안에 광주를 사람 살 만한 공동체로 가꿔 나갈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보다 더한 기쁨이 어디 있겠는가?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 된다. 기억하기 위해서는 기록해야 하며, 그 기록이 훗날 역사가 되는 것이다. 목숨을 걸고 첫 기록을 하는 자, 그래서 나는 언론인을 존경한다. "치밀어 오르는 울음을 간신히 참으면서 이 비참한 광경을 필름에 담았다."는 유르겐 힌츠페터의 말을 나는 기억한다.광주의 비극을 서방세계에 최초로 전한 진정한 언론인, 그리고 그 흔적을 망월동에 묻은 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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