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각 가거도는…” 최악 속 가장 생생한 보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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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광주전남기자협회
- 작성일 20-09-25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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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각 가거도는…” 최악 속 가장 생생한 보도를
태풍 길목답게 어마한 위력
‘그림 찾아라’ 종일 동분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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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태풍의 길목, 신안 가거도에서 사람도 날려버릴 위력의 비바람을 뚫고
중계방송을 하고 있는 김애린 목포KBS 기자.
처음 가거도행이 결정되었을 때, 가장 먼저 한 일은 인터넷 검색이었다. 하늘색 바다 위에 섬 하나가 떠 있었다. 지도를 클릭해 몇 번이고 손가락을 오므렸다 펴봤지만 육지가 보이지 않았다. 굉장한 곳이구나. 아침 8시에 출발해 오후 1시가 다 되어서야 가거도 땅에 발을 디뎠다. 마중 나온 숙소 사장님께선 “들어올 땐 마음대로 들어와도 나갈 땐 마음대로 나갈 수 없을 거”라며 호탕하게 웃으셨다. 그렇게 기약 없이 뱃길이 끊겼다.
가거도에서 맞는 태풍의 위력은 매서웠다. 높이 13.5미터가 넘는 방파제를 가볍게 뛰어넘는 파도와 바람, 마치 재난영화 CG같았다. 태어나서 처음 몸이 밀렸다. 자존심이 상했다.
취재도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짙어진 안개 탓에, 파도가 보이지 않았다. ‘그림’을 찾아 계속 자리를 옮겼다. 방파제 너머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서, 파도와 가까운 해수욕장으로, 다시 마을회관 옥상에서 선착장 앞 골목으로. 입에서 자꾸 짠맛이 났다.
잠이 들었는지, 지쳐 쓰러졌는지 모를 밤을 보내고 다음날이 됐다. 방파제 끝부분이 폭삭 내려앉아 있었다. 3천톤의 무게를 자랑하는 콘크리트 블럭도 앙상한 철골을 드러내며 고꾸라졌다. 10년 넘게 만들고 부서지기를 반복하는 가거도 방파제였다. 언제든 파도가 집 안으로 들이닥칠 수 있다는 불안감, 방파제가 무너져 생활을 무너뜨릴 것이라는 공포가 주민들에게는 있었다. 대부분 버텨줄 거라는 기대도 없었으니 실망할 것도 없다는 입장이었지만, 모두가 어서 빨리 완공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어쩌면 주민들의 ‘기대 없음’에 나도 기여해온 것은 아닌지, 주민들에게 어떤 도움도 되지 못했다는 생각에 조금은 무력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가거도에서의 태풍 보도도 끝이 보였다. 선착장엔 다시 돌아온 배에서 내려진 식료품이며 생필품이 차곡차곡 쌓였다. 태풍이 지나간 자리, 소란스러운 일상이 다시 시작되고 있었다.
요란한 엔진소리를 내며 목포행 쾌속선이 방파제를 돌아 빠져나갔다. 바닷물이 찰랑거리는 창문 뒤로 무너진 가거도 방파제가 멀어져 갔다.
가거도에서 마지막 날, 숙소 사장님께서 해주신 말씀을 떠올렸다. ‘먼 곳까지 와 하루 종일 방송해주니 더 관심을 가지고 단단히 대비를 하게 됐다. 너무 고맙다’. 깨져있던 마음의 틈을 메꿔주는 단단한 한마디였다. 현장에 있어야 하는 이유를 찾은 것 같았다. 재난을 막을 순 없지만, 함께 비를 맞아주는 것만으로도 기꺼이 고마워해주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그곳에도 여기에도 있으니까. 아직은 계속해보고 싶었다.
/김애린 목포KBS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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