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안부는 묻지 못한 그날과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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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광주전남기자협회
- 작성일 25-04-08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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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안부는 묻지 못한 그날과 이후
참사 취재 후 트라우마 혼자 감내
“선후배에 털어놓기도 눈치 보여”
빠듯한 인력에 치료는 언감생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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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29일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이후 A기자는 한동안 무력감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 활주로에 나뒹굴던 짐들이 계속 생각났기 때문이다. 바쁜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꾸렸던 짐, 가족과 친구에게 전할 선물이 담긴 가방이 오히려 허망하게 다가왔다.
“그날 이후 ‘열심히 살아서 뭐하나’ 하는 무력감이 긴 시간 이어졌어요. 몸도 지칠 대로 지쳤지만, 매일 마감해야 하는 지면 앞에서 ‘힘들다’고 말할 수 없었어요. 일하기 싫은 핑계처럼 보일까 봐요.”
A기자는 지금까지도 공항의 탄 냄새가 느껴지는 듯하다고 했다. 그러나 선배에게 이를 털어놓을 수 없었다. 이같은 현상이 트라우마인지 확신도 없었고, 바쁜 선배들에게 꺼내기도 조심스러웠다. ‘무슨, 우리 때는…’ 하는 핀잔이 돌아올까, 자신의 어려움이 가벼운 무용담처럼 보일까 두려웠다.
같은 현장에 있었던 B기자는 아직도 그날의 꿈을 꾼다. 갑작스레 투입됐던, 수습되지 않은 현장이 꿈에 나온다. 이 꿈은 선명하게 반복된다. 동기들에게는 이야기를 털어놓지만 전문 치료는 고려하지 못했다. 선배들이 지지해줄 거라는 믿음은 있지만, 빠듯한 인력 상황에서 자리를 비우는 것이 동료들에게 미안했기 때문이다.
C기자는 이번 취재 기간 동안 스스로를 돌보려 애썼다. 긴장된 현장을 다녀오면 몸과 마음을 이완하기 위해 전문 마사지를 받고,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현장과 멀어지려 노력했다. 당시에는 잘 대처했다고 여겼지만 최근에서야 자신의 트라우마와 마주했다. 제주로 혼자 여행을 떠나던 날, 참사 현장이 반복적으로 떠올랐다고 했다. 이전까지는 여행을 떠나며 가족에게 연락하지 않았던 그가, 이번만큼은 ‘출발한다’는 문자를 남겼다.
이처럼 참사 현장 취재 이후의 트라우마는 다양한 모습으로 기자 개인에게 남는다.
타인의 고통을 기록하는 과정에서 감정은 자연스럽게 전이되지만 피해자와 유가족의 깊은 아픔 앞에서 자신의 고통을 꺼낼 수 없었던 기자들에게 트라우마는 ‘직업적 숙명’처럼 자리 잡는다. 오랜 시간, 현장을 기록한 기자의 고통은 회피되거나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여겨져 왔다.
기자 개인이 감정을 숨기고 트라우마를 숙명처럼 받아들이는 구조는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다. 기록자의 회복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언론의 책임이며 지속 가능한 보도를 위한 조건이자, 타인의 고통에 책임 있게 다가가기 위한 출발점이기도 하다.
이제는 언론 내부에서도 기자의 감정과 상처를 외면하지 않는 태도가 필요하다. 기자가 자신과 동료의 안부를 묻고, 조직이 그 회복을 위한 안전망을 함께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김혜진 편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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