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생활] 김은지 전남일보-등반·템플스테이로 치유한 서른앓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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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광주전남기자협회
- 작성일 23-07-21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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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생활 김은지 전남일보
등반·템플스테이로 치유한 서른앓이

“서른은 어떤 느낌이야?” 최근 1년간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이 아닐까 싶다. 사실 별생각이 없었음에도 ‘서른’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주변인들 덕분이었다. 그래서 이왕 다가온 서른을 그 누구보다 유난 떨며 맞아주기로 결심했다.
가장 먼저 잡은 목표는 한라산 등반이었다. 한라산 등반을 맘먹은 건 별거 아닌 이유에서였다. 초등학교 6학년, 13살에 봤던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 때문. 새 삶을 살기 위한 다짐으로 한라산에 오르는 그 모습이 어린 나이에도 꽤 인상적이었나 보다. 스무 살에 이미 한차례 백록담을 찍었던 터라 의미를 부여하기에도 충분했다.
그리고 다가온 2022년 12월 2일. 새벽 다섯 시에 기상한 나는 관음사로 향했다. 관음사를 택한 이유는 어차피 하는 고생 제대로 해보자는 생각에서였다.
어두컴컴한 새벽 산을 헤드랜턴도 없이 오르기 시작했다. 평소라면 “무서웡~”하며 호들갑 떨었을 나지만 그럴수록 정상 도착시간만 늦어진다는 생각에 앞만 보고 올랐다.
오르다 보니 등산 초반엔 싸락눈이었던 눈송이가 점점 굵어져 불안함이 커졌다. 아니나 다를까 등산로에서 마주친 아저씨가 “대설주의보 내려서 통제 중이에요. 아마 정상은 못 올라갈 거예요”라고 말했다.
그래도 어떡해? 가야지. 갈 수 있는 데까지라도 가보자는 맘으로 오르다 보니 삼각봉 대피소에 도착했다. 그제야 꺼내 본 휴대전화엔 대설주의보 알림과 해제 알림이 나란히 쌓여있었다. ‘아 또 이렇게 나한테 서사를 주는구나’ 생각했다.
잠깐 숨을 고르고 다시 정상으로 향했다. 구름 위로 오른 뒤에 내려본 풍경에 대설주의보를 이겨내고 온 보람이 있다 생각했다.
수많은 계단을 오른 끝에 정상에 도착했다. 겨우 오른 정상엔 대설주의보가 내렸던 곳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맑게 갠 하늘과 안개 하나 없는 깨끗한 백록담이 기다리고 있었다. 다시 한번 ‘될놈될(될놈은 된다)’을 가슴에 새겼다.
정상석에서 인증샷을 찍고 난 후에야 제대로 된 백록담을 마주했다. 한 아주머니가 옆에서 “보고 있어도 너무 아깝다”고 하시는데 내 마음 같았다.
하산할 때는 상대적으로 완만한 성판악을 선택했지만, 힘듦은 관음사와 별반 다를 바 없었다. 내려가는 내내 ‘왜 지금 여기서 이러고 있나’ 곱씹었다. 결국, 4시간 만에 지칠 대로 지친 몸으로 하산을 마쳤다. 정상에서 신청해놓은 인증서까지 야무지게 발급받았다. 총 열 시간 남짓의 대장정이 그렇게 끝났다.
그리고 새 정권에 접어들며 또 한 번의 서른을 맞이하게 됐다. 만 서른.
서른 번째 생일이었던 지난 6월 9일, 이마저도 평범하게 보낼 수 없었던 나는 템플스테이를 선택했다. 불자가 아닌 천주교인(10년째 냉담 중)이지만 평소 사찰을 즐겨찾기도 했고 무엇보다 속세와 거리를 두고 싶은 마음이 컸다. 속세와 멀어져 보낸 첫 생일은 나름 만족스러웠고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공자는 서른을 ‘이립(二立)’이라 했다. 마음이 확고해 도덕 위에 서서 움직이지 않는다는 뜻으로, 더 이상 주변 환경에 흔들리지 않고 스스로 설 수 있는 나이임을 의미한다.
서른이 됐다고 해서 달라진 점은 하나도 없다. 하지만 일련의 경험들로 ‘이립’에 좀 더 가까운, 좀 더 단단한 어른이 됐다는 것만큼은 확신한다. 다소 유난스러웠지만, 후회 없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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