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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레기에서 기러기의 우아한 날갯짓을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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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광주전남기자협회
  • 작성일 24-10-10 16:23
  • 조회수 1,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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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레기에서 기러기의 우아한 날갯짓을 꿈꾸다

 

27년차 기자의 저널리스트를 위한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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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닉 내 낡은 서랍속의 바다 (1998)

돌이켜보면 이십대 후반에 언론사에 입문해 어느덧 27년의 세월이 흘렀으니 언론사 짬밥으로 치면 나도 어느 정도 왕고참의 반열에 올랐다고 할 수 있다. 신문사 수습기자 시절 경찰서 마와리를 돌 때 만났던 사건기자들이 지금은 데스크를 맡고 있거나 편집국장을 하고 있으니 세월의 유속이 참으로 빠르게 느껴진다. 내가 언론사 경력을 시작한 첫 출발점은 IMF 외환위기 때인 1998년 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 신해철 민물장어의 꿈 (1999)

20여년 전과 지금의 언론환경을 놓고 보면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디지털 온라인 매체의 영향력이 막강해지면서 신문으로 대표되는 소위 레거시 미디어는 유튜브나 인터넷 미디어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MZ세대들에게 종이신문이나 라디오, TV 매체는 올드세대의 진부한 유물일 뿐이고 레거시 미디어는 이제 과거의 화려한 날을 뒤로 한 채 뒷방 늙은이로 전락하고 있다.

하지만 인터넷 미디어가 득세하기 전인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신문으로 대변되는 레거시 미디어의 전성시대였다. 그 시절 언론사 기자는 행정고시나 사법고시 못지않게 열정 넘치는 엘리트 취준생들이 선망하는 직업 중의 하나였고, 나름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고 글빨좀 된다는 문청(문학청년)들은 앞다퉈 신춘문예나 신문사의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1988년 언론자유화 이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온 제4의 권력은 IMF라는 거대한 쓰나미가 휩쓸고 지나가면서 새로운 변곡점을 맞는다. 디지털 혁명이라는 도전의 서막이었다.

 

# 델리스파이스 고양이와 새에 관한 진실(2000)

언론사 경력 중에 가장 잊지 못할 순간을 꼽으라면 역시 짧지만 강렬했던 수습의 추억이다. 수습은 정식 기자가 아니기 때문에 바이라인도 허용되지 않는 미생(未生)의 신분이 그 시절 수습기자의 모습이다. 수습기간은 기본 6개월을 원칙으로 하는데 수습기자들끼리 조를 짜서 매일 같이 경찰서 마와리를 돌고 병원 응급실이나 장례식장, 사건사고 현장을 뛰어다니며 취재한 내용을 사수 선배에게 보고하는 일이 주된 임무였다. 서툴고 실수투성이인 수습들에게 선배들은 가차 없이 욕지거리를 쏟아냈다. 지금은 아무리 언론사 후배라 해도 막말이나 욕설을 하면 언어폭력으로 처벌을 받아야 하는 시대가 됐지만 언론사 선후배간의 찰진 대화는 그 시절 자연스러운 풍경 중의 하나였다.

게다가 술자리 문화가 흔하던 시절이다 보니 쫄병기자들은 주야장천 술자리를 쫓아다녀야 했다. 인맥을 훈장처럼 여기던 시절이었고, A급 정보를 얻기 위해서라도 기자들에게 술자리 취재는 선택이 아닌 필수였는데 선천적으로 술이 약한 나로서는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수습 시절에는 하루 걸러 술자리가 있다시피 했는데 곤드레만드레 취한 상태에서 수습 교육을 시킨다며 심야에 마와리를 돌리거나 심지어 취재지시를 하는 선배도 있었다.

그렇게 혹독한 수습 기간이 끝나고 나면 비로소 기자라는 타이틀을 달게 되는데 드디어 부서 배치를 받고 실명으로 내 이름의 기사가 실린 입봉의 순간은 그렇게도 짜릿할 수가 없었다.

 

# 김윤아 봄날은 간다(2001)

신문사 사건기자로 시작해 경찰서와 사건사고 현장을 분주히 뛰어다니고 문화부에서 세기말 뉴 밀레니엄 특집을 연재했던 일, 지금은 고인이 되신 저명 인사들을 취재했던 일, 스포츠를 담당하며 프로야구 해태타이거즈의 마지막 시즌을 함께했던 순간도 잊을 수 없는 장면들이다.

그리고 2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미디어 환경은 급변했고 언론사 기자를 대하는 대중들의 인식도 많이 달라졌다. 나 같은 올드보이 기자들은 그때가 좋았지” “좋은 시절은 갔다아 옛날이여를 외치고 있을지 모르겠다.

언론과 기자를 바라보는 세간의 시선이 극적으로 표출됐던 때가 세월호 참사 보도 당시 기레기라는 신조어가 등장하면서부터가 아닌가 싶다. 처음 기레기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철새인 기러기와 혼동했다. 알고 보니 기자와 쓰레기를 합성한 말이었는데, 기득권에 기생하고 정권의 칼춤에 장단을 맞추는 작금의 언론행태를 보고 있노라면 기레기라는 소리를 들어도 싸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기레기라는 말이 회자되는 현실은 씁쓸하다. ‘사회의 목탁이 되어야 할 언론이 기레기로 전락한 현실은 슬픈지만 사실이다.

그래서 언론은 기레기가 아닌 기러기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좌우 대칭의 대오를 갖추고 일사분란하게 안행(雁行)’을 하는 기러기 말이다. 기러기들의 안행은 신(), (), (), ()의 네 가지 덕을 갖추고 있다고 했다. 지금의 언론 현실에 대입해 본다면 언론과 기자들이 신뢰를 얻고, 특정 정파나 기득권에 치우침 없이 균형 있는 보도를 하며, 파사현정의 자세로 지혜롭고 정의로운 언론 본연의 사명을 다한다면 기레기라는 말도 언젠가는 사라지는 날이 오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김종범 BBS광주불교방송 방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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