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온다’ 이후 다시 찾은 광주, 끝나지 않은 오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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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광주전남기자협회
- 작성일 26-06-04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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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이후 다시 찾은 광주, 끝나지 않은 오월
대구 기자가 본 광주의 5월
5·18 역사기행 따라 첫 광주행
도시 곳곳에 남은 오월의 흔적
헌법 전문 수록 필요성 체감도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며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낸 시적(詩的) 산문”이란 평을 받으며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한강.
한 작가의 대표작 ‘소년이 온다’는 피로 물든 광주 거리에서 살아남은 이들의 상처와, 잊히지 않는 기억의 무게를 담아내 새로운 인식을 선사했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작가 한강은 물었다. 죽음은 흔히 과거의 사건, 더 나아간다면 역사적 사건으로 인식된다. 그러나 과거는 종결된 시간이 아니다. 과거가 현재를 도우려면,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하려면, 산 자들은 하늘의 별이 된 이들의 희생을 기억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 힘겨운 역사를 다루는 ‘소년이 온다’는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 걸까.
질문의 흔적을 따라가기 위해 지난 5월 7일, 2박 3일간 광주를 찾았다. 그것이 광주와의 첫 인연이었다.
광주전남기자협회와 한국언론진흥재단 광주지사 주최로 열린 5·18 역사기행은 역사적 현장과 ‘광주 정신’을 엿볼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구성됐다. 첫날에는 ‘끝나지 않은 오월, 왜 아직 5·18인가…여전히 도전받는 진실’을 주제로 이재의 5·18기념재단 연구위원의 강연이 진행됐다. 이 위원은 2024년 12·3 비상계엄 사태를 언급하며 “광주의 역사가 시민들의 기억에 살아 있었기 때문에 시민들이 국회 앞으로 달려갈 수 있었을 것”이라며 “1987년 6월 항쟁 역시 5·18 정신의 연장”이라고 했다.
다음 날인 8일에는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아 희생자들을 참배했다. 산 자로서 느끼는 진혼 의식, 혹은 부채 의식이었을까. 영정사진 속 앳된 얼굴들과 이름 없는 묘비들을 마주하곤 눈물이 터져나왔다. 누군가는 스무 살도 되기 전에 생을 마감했고, 누군가는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채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졌다.
이어 방문한 옛 전남도청 일대는 항쟁의 흔적을 엿볼 수 있었다. 건물 내부에는 5·18을 기록한 전시가 열리고 있었는데, 지역사회가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다음 세대에 전하기 위해 얼마나 오랜 시간 체계적으로 기록과 아카이빙 작업을 이어왔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한편 이 위원이 강의가 있던 7일, 국회에서 5·18 정신 헌법 전문 수록에 대한 논의가 야당의 반대로 무산됐다. 작가 한강은 또 물었다. “인간은 어떻게 이토록 폭력적인가”, “인간은 어떻게 그토록 압도적인 폭력의 반대편에 설 수 있는가”.
아무런 모순도 해결하지 못하는 이 수동성이 너무 팽배해 있어서 변화의 동력이 축적되지 못한 채 산산이 흩어진다. 이 위원은 말했다. “5·18은 국가폭력의 반복 가능성에 대한 경고이자 민주주의의 기준점 역할을 합니다. 정치권력 지형의 변화에 따라 진실에 대한 왜곡과 날조 그리고 폄훼는 계속될 것입니다.” ‘광주 정신’을 기록하는 일은 단순히 과거 역사를 기억하는 것을 넘어, 오늘날 민주주의를 끊임없이 되묻는 일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5·18 정신 헌법 전문 수록은 특정 진영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사회 전체의 몫이다.
짧지만 깊었던 2박 3일의 여정 끝에, 왜 광주가 오랜 시간 ‘민주주의의 성지’로 불려왔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오월의 선량한 시민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민주주의 역시 존재함을 몸소 깨달았다. 광주에 초대해주신 선배 기자들께 감사드린다.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기억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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