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혜진 기자의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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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광주전남기자협회
- 작성일 15-06-05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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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혜진 기자의 육아일기
시간·장소 공유했던 육아휴직
부모·자식관계 든든한 밑천됐다
“아이 한 명 키우려면, 온 동네 나서야”
실은 누군가를 붙잡고 말하고 싶지만, 말 할 수 없는 일들이 훨씬 많은 게 ‘직장 맘’의 삶이다. 말하지 않고 감내하는게 익숙해졌는지도 모른다. 아내이자 엄마, 그리고 직장인의 길을 선택한 이상 투덜대거나 누구의 탓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는, 온전히 내 몫이라는 일종의 강박관념도 작용했을 것이다.
무탈한 일상은 그래서 가장 고맙다.퇴근 후 다시 시작되는 집안일, 두 아들과 몸싸움을 하다 체력이 고갈되더라도, 아이들을 모두 재운 뒤 심야에 홈쇼핑 채널이라도 돌려볼 수 있는 '짬'이 생긴다면 그것이 내게는 최상이다.
구두를 신은 채 아이를 업고 응급실을 서성이거나, 병원에 입원한 아이와 밤을 지새우다 새벽에 빠져나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회사로 출근해야 하는 상황, 밤새 일 때문에 전화통을 붙잡고 있다가 새벽에 아이 소풍 도시락을 싼 뒤 지친 얼굴과 마음을 화장으로 덮어야 하는 상황은 제발 없었으면 하는 것이 소박하지만 절박한 바람이다. 매일 똑같은 일상을 반복하는 것이 내게는 가장 고마운 일이다.
기자정신, 자아실현, 이런 거창한 단어를 언급하지 않더라도?아들 둘을 키우는 여기자의 직장 생활은 하루하루가 치열하다. 어린이집에서 혹은 할머니와 시간을 보내고 있을 아이들을 생각하면, 동 시간대에 내게 주어진 낮 동안의 시간을 더욱 열심히 살아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부지런히 애를 써도 육아와 병합된 여기자의 삶은 의지대로 흘러가지 않는 경우가 많아 종종 크고 작은 난관에 부딪힌다.
하루살이 방송기자라 그날그날 리포트를 취재하다가도 잠시 모드를 바꿔서 어린이집 선생님이나 시부모님 혹은 친정 엄마와 비교적 상냥한 목소리로 전화 통화를 하고, 다시 취재원과 입씨름을 하는 등의 상황이 반복되는 날이면 뇌가 산산조각 나는 듯한 느낌을 받는 경우도 잦다. 원래 쓸데없이 눈물이 많은 편인데, 마음 편히 울 시간도, 장소도 허락하지
않는다.
구구절절, 앞서 언급한 상황들을 버텨내게 한 것이 모성의 위력이 아닌가 싶다. 내 경험에 비춰 아이를 뱃속에 품은 40주 동안 뿌려진 모성의 씨앗은 육아휴직 기간 싹을 틔울 수 있었다. 온 종일 두 아이와 함께 했던 경험과 시간들이 그 원천이다. 아이 스스로 엄마 품을 떠날 때까지 오랜 시간 함께 있어주지는 못했지만, 땅에 두 발 딛고 걸을 수 있을 때까지 만이라도 모든 시간과 장소를 공유했던 기간은 내게도 아이들에게도 가장 견고한 믿음과 안식을 주었다. 그 기간이 부모 자식 관계의 든든한 밑천이 됐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물론 산후 우울감, 복직 후 업무 적응에 대한 우려 등 심리적인 불안도 적지 않았고 연년생인 두 아이들을 돌보며 밥은 커녕 커피 한 잔도 마시기 힘들어 푸념한 적도 많았지만, 그 시간은 결국 약이 됐다. 애들을 겨우 재우고 늦은 점심으로 끓인 짜장라면을 냄비째 바닥에 떨어뜨려 바닥은 난장판이 되고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온 집안에 울려 퍼지던 어느 날 한낮의 처참한 사건도 흘러간 추억이 됐다.
육아휴직의 필요성은 사실 이런 경험담이 아니더라도 애를 낳고 키우는 모든 부모가 공감하는 일이다. 그러나 직장 안에서의 현실은 내 아내가 아니고, 내 자식이 아니면 동료직원의 육아휴직을 박수 치며 응원하기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성별을 떠나 육아휴직 기간 동안의 업무를 대신 부담해야 하는 다른 조직원들의 생각은 각자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만약 고민의 지점에 서 있다면 이제 막 세상에 태어난 갓난아기가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에, 부모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는 사실이 우선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이 한 명을 키우려면 온 동네 사람들이 나서야 했다는, 그 시절 어른들의 말씀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육아휴직에 대한 긍정적인 사회적 분위기와 문화 정착의 필요성을 함축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직장맘의 조심스럽고도 애절한 바람을 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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